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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습관에 갇히면 남의 말 안들려" -법륜스님
    ◑解憂所 2011. 10. 25. 06:59

     

    "습관에 갇히면 남의 말 안들려"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아마 전 세계에서 법륜 스님(55·평화재단 이사장)의 도량이 가장 넓을 듯싶다. 전 지구 환경을 살리자는 '빈 그릇 운동'을 벌이고 북한뿐만 아니라 인도, 이라크, 아프리카, 필리핀, 아프가니스탄 등 전 지구를 무대로 굶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들을 찾아다니니 그렇다. 그는 세상의 경계에 부딪히며 일어나는 '마음'으로 수행을 한다. '나'라는 고집이 없고, 누굴 탓하지도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니 이해와 관용에 맥이 닿는다. 지난 12월 28일 늦은 오후 서울 서초구 평화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6.6㎡(2평) 남짓한 이사장실은 사무실 각 방 중에서 가장 작은 방이다.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난 화분 1점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래도 명색이 이사장실인데 너무하지 않나요?" 기자의 우문에 그가 답했다. "중이 쓰는 방에 난 화분만 하나 있으면 되지 뭐가 필요해?"

    ◆넌 뭐가 그리 바쁘냐

    1969년 초겨울 어느 날, 기말시험을 치르느라 마음 바쁜 그를 도문 스님이 불러세웠다. "스님, 저 오늘 바쁩니다." "그래? 너 지금 어디서 왔니?" "학교에서요." "학교에 오기 전에는?" "집에서요." "집에서 오기 전에는?" 눈 밭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듯 질문이 이어졌다. "그 전에는?" "어머니 뱃속에서 났죠." "그럼 그 전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그의 마음속에 짜증이 일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걸까. "그럼 너 지금 어디로 갈 거니?" "집에 가야죠." "그래? 집에 갔다가는?" "학교에 가야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죽겠죠." "그 다음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스님의 일갈이 떨어졌다. "야, 이놈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스승과 짧은 대화는 평생 그의 화두가 됐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길로 까까머리 고교생은 짐을 싸 경주 분황사로 들어갔다. 유난히 공부를 잘 해 과학자가 되겠다던 꿈도 그렇게 달라졌다. 어린 자식이 절에 들어갔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어머니는 절에 찾아와 그를 데리고 가겠노라 고집을 세웠다. 스승님의 대꾸.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 압니까?" "잘 모릅니다." "나는 압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절에서 나가면 단명할 거요." 화들짝 놀란 어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그럼 스님 아들 삼으십시오." 스승은 그에게 '법륜(法輪)'이라는 법명을 정해줬다.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전파하라는 뜻. 법명대로 그는 20년 넘게 세상에서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다. 만약 그날 스승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천문학자나 물리학자가 됐겠죠." 둘 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법칙을 찾는 학문이다. "과학이 사물이 움직이는 원리라면 수행은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원리거든요." 법륜스님에게 대뜸 물어봤다. "스님은 깨달았습니까?" "깨달았다고도 할 수 없고 못 깨달았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이죠." 그는 불교에 귀의한 뒤에도 산중에만 머물지 않았다. 민주화의 염원이 강렬하던 1970, 80년대를 관통하며 그도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에 몸을 담았다. 1983년 수개월간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물리적 투쟁 방식의 민주화 운동이 불교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는 번뇌는 떠나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을 겪으며 그는 새로운 운동 방식에 눈을 돌렸다. 부처님의 법에 수행을 기초로 환경운동, 빈곤퇴치, 민족통일운동을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1988년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수행과 사회실천을 함께하는 '정토포교원'을 열었다. 지금의 '정토회'다. 정토회는 '일과 수행이 하나'를 목표로 한다. 그는 '상구보리 하와중생'(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구제함)으로 뜻을 설명했다. "수행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일은 세상을 위해서 보탬이 되는 것을 말해요. 세상에 기여하는 것과 내 마음을 닦는 일이 둘이 아니라는 거죠. 서로 생각이 다를 뿐임을 인정하고 세상과 맞닿은 상태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거예요."

    ◆행복해지고 싶다면 습관을 깨라

    -죽으면 정말 극락이나 지옥에 갑니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행복하게 살면 과거도 행복한 것이고, 미래도 행복한 것이에요. 천당이 있다면 마땅히 갈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있으면 갈 것이고, 없어도 상관없고. 과거와 미래는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영화 같아요. 꿈 같은 거죠. 지나간 과거는 현재를 사는 데 교훈될 만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미래가 현재가 될 때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 미래만 생각하면 근심 걱정이 생기고,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면 괴로움이 생겨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먹기 쉽지 않잖습니까.

    "담배 피우는 게 쉬워요? 안 피우는 게 쉬워요? 흡연자라는 조건을 빼면 안 피우는 게 쉽죠. 안 피우면 돈도 필요 없고, 사러 안 가도 되고, 봉지 안 뜯어도 되고, 안 빨아도 되고, 안 뱉어도 되고 재를 안 떨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피우는 사람에게는 안 피우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에요. 피우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거든. 습관이 들었다는 걸 불교 용어로 카르마, 업식이라고 해요. 습관이 들어버리면 쉬운 일이 어려운 일이 돼 버리는 거에요. 습관에 속박받고 습관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과보가 따라와요. 그런데 사람들은 습관을 중심에 놓고 그걸 합리화시키는 해석을 자꾸 하거든. 정치인들 보고 국민들이 다 '미쳤다'고 해도 자기들은 그 인식 체계 안에 있어요.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똑같이 사물을 봐도 안 보이고, 똑같이 들어도 안 들리는 거죠."

    -'소통의 부재'라는 원성을 듣는 이명박 대통령도 그럴까요?

    "그렇죠. 그분이 살아온 세계와 안목, 사고가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 아우성치는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거예요. 여기에는 나쁜 줄 알고도 고집하는 사람과 자기가 하는 게 옳은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가 피해가 더 커요. 불교 경전에는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고 해요. 나쁜 줄 알고 행하는 사람은 행동을 할 때 약간의 망설임이 있고 반대가 심하면 회피를 하게 되는데 나쁜 줄 모르고 하는 사람은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반대에 무감각하고 두려워하지 않죠."

    ◆ 밥이 인권이다

    - 지금 북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올 봄에 농촌과 도시의 많은 빈민들이 굶어죽었어요. 대규모 아사자보다는 동네별로 조금씩 죽어나가는데 전국적으로 하면 대단히 많죠. 배급이 안 되니까 가난한 사람부터 먼저 굶어죽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정보 공개를 안 해요. 굶어죽는 현장을 공개해도 도와줄까 말까인데 안 굶는다니 누가 돕겠어요. 또 북한이 지난 십몇년 간 어렵다고 하니까 우리 국민들이 만성이 됐어요. 10년 전에 굶어죽었고, 요즘 다시 굶어죽는 건데 긴급사태라는 게 인식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원하는 식량들이 급박하게 굶어죽는 사람들에게까지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어렵죠. 문제는 결단이에요. 쌀 100가마를 줬는데 50가마는 딴 데로 가고 나머지만 갔다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고 아예 안 줄 것이냐, 아니면 50가마라도 갈 수 있도록 계속 줄 것이냐 하는 거죠. 저는 유실되더라도 계속 보내겠다는 생각이에요."

    -북한 인권을 두고 이념에 따라 다른 얘기를 합니다. 보수 세력은 북한 체제 비판을 하고, 좌파세력은 열악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인권이 열악한 건 사실이에요. 지구 상에서 가장 열악한 나라 중 하나예요. 개선이 되어야죠. 북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북한 정부를 욕하고 데모를 한다고 해서 개선이 안 되거든요. 실질적으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는 노력을 해야죠. 우파들의 문제는 실질적으로 개선이 됐느냐는 고려를 안 해요. 중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에 난민 몇명을 데리고 들어가면 국제 사회에 이슈가 되겠지만 중국 정부가 수많은 난민을 체포해서 강제소환한다는 부작용이 따르거든요. 그 점도 같이 평가를 해야죠. 사회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그런 자극이 인권 탄압의 요인이 된다는 것까지 고려를 해야 돼요. 그게 조화죠. 사실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권리는 부차적인 거예요."

    ◆힘과 정의의 조화가 중요하다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남북 관계, 북미 관계는 어떤 변화를 겪을까요?

    "민주당 정부는 강압보다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거든요. 북미 간 직접대화의 수준이 높아질 거예요. 지금까지 6자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양자회담을 진행했다면 양자회담의 비중이 높아질 것 같아요. 또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만큼이나 한국하고 견해차이도 대화를 통해서 조정할 거예요.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진 않겠죠. 이명박 정부가 현재 정책을 고수하면 미국과 약간의 갈등이 생길 것이고, 갈등이 생긴다면 친미와 반북 사이에서 보수세력이 분열될 거예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남북 관계 경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 정부 입장은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니까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구걸하지 않겠다'고 나오거든요. 결국 서로 자존심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인도적 지원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처럼 작은 문제부터 푸는 게 적당하다고 봐요. 북한은 북미수교나 평화협정, 경제지원 등 요구가 수용되기 전에는 완전히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런 현실 속에서 상대가 뭘 원하는지,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헤아려서 풀어야 돼요. 북한에 끌려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거죠."

    -요즘 뉴스를 보면 화가 치민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화를 내지 말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지. 사회는 정의가 아니라 힘에 의해 변화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바른 길로 가는 동시에,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만들어야 돼요. 바른 것만 주장을 하면 대중과 유리된 '지사'가 될 수밖에 없고, 힘을 갖기 위해서 정의를 포기하면 결국 원칙을 포기하고 동조해 버리거든요. 이 둘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느냐가 운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거죠."

    -앞으로 계획은?

    "장기적으로는 문명 전환 운동이죠. 소박하게 살기,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확산시키는 것. 농촌에 수행하고 생산하고 봉사하는 생산공동체를 만들까 해요. 선사들은 앉아서 죽고, 서서 죽는 자화상을 그린다는데 저는 소를 몰고 땅을 가는 농부 같은 그런 모습이 좋아요.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는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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