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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케,엄마를 부탁해"
    人間의 香氣 2011. 9. 14. 11:30

    올케,엄마를 부탁해

    어찌 지내는가?
    꽃비 오나 했더니 하마 여름 장마인가 싶게
    날씨 한번 고약허이.
    어릴 적 이맘때면 천지에 흐드러진
    앵두 따러 동산을 뛰어 다녔는디
    인자는 꽃바람에 처녀 가슴 콩닥거릴 새도 없이
    목하 여름으로 쳐들어가니 세월 참 무정허네.
    새퉁스럽게 왠 편지질인지 묻고 싶겄지.
    바깥일로 머리 뒤숭숭한 우리 동생헌틴
    암만 말고 자네만 알고 있소.
    작년부턴가 몇 발짝만 걸어도 벌렁벌렁 숨이 차고
    어깻쭉지 욱신욱신 하더니 근자엔 끽소리도
    못 낼만큼 가슴이 아퍼서 병원엘 갔었지.
    심장 혈관이 막혔다누만 그것두 세개나.
    의사양반은 걱정 말라고 수술하면
    좋아 진다고 하고 내 또한 당장 큰일을
    당한대도 별 볼일 없는 인생이지만서도
    우리 엄니 시골집에 혼자 남을 그 노인네가
    명치 끝에 걸려 나가 요즘 잠이 안 오요.

    우리 엄니 별나시지
    딸인 내가 봐도 괴팍하고 까탈스럽고
    요즘은 그집 전화기에 불 안나능가?
    당신 아들 밥 굶을까 봐 날도 안샜는디
    전화 걸어 밥은 앉혔느냐
    반찬은 뭣을 해 먹였느냐 닦달 안 하시능가?
    기별도 없이 서울 아들 집에 들이 닥쳤다가
    집에 기척이 없으니 '아녀자가 어딜 싸돌아 다니느냐
    내 아들이 새빠지게 벌어온 돈 길 바닥에
    쓰고 다니느라 바쁘냐,대학 나왔으면 다냐'
    악다구니를 하셨대서 나가 얼매나 면구스럽든지.
    요즘 젊은 엄마들이 좀 바쁜가 말이지.
    애 잘 키워보갰다고 그 좋은 직장 버리고
    들어 앉은 자네한테 말이지.
    그래도 나가 딸이라고 구실을 하자면
    말씀은 그리 요란스레 하셔도 속내는
    양털처럼 따사로운 노인이라네.
    또 알고 보면 우리 엄니도 귀여운 여인이라네.
    낼모레 칠순이어도 아들 뻘 되는 40대 노래교실
    강사한테 귀염있게 보일랴고 백발 찬란한 머리를
    구루프로 마는 모습을 자네가 봤어야 허는디.
    소싯적엔 하날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세 오빠들보다 칭송이 더 자자했는디
    여자라고 학교를 안 보내
    저리 괴팍스러워졌다는게 당신 분석이시네.

    엄니 춤바람 났던 거 얘기 했등가?
    하고한날 아부지가 오토바이 타고 나도시니
    엄니도 동네 아지매들 따라 지루박을 배우러
    나섰는디 춤선생 집 문간 앞에서 딱 걸렸다지.
    있는 힘껏 줄행랑을 치다가 넘의 집 똥통에 빠졌는디
    사방에 고린내를 풍기면서도
    나 죽었소 하고 싹싹 빌었다네.
    춤추는기 큰 죄도 아닌디 빌긴 왜 비냐고
    내가  따졌더만'넌 누굴 닮아  앞뒤 꼭지가 맥혔을꼬'
    혀를 차시네 '안 빌면 그길로 황천 길인디
    위기는 벗어나고 봐야지,
    복수할 날은 쇠털같이 많지 않더냐'하시네.
    진짜로 울 아부지 앓아 누우셨을때 3년을 꼬박
    병 수발 하면서도 그간 쌓인 분풀이를 조그조근 하시데.
    오토바이 뒷자리에 다방 마담 태워 달리다
    논두렁에 쑤셔박혔던거,빚 보증 잘못 서서
    내 등록금 홀랑 날린 것 꺼정 죄다.
    無學인 엄니한테 여고 나온 내가 배우는 것도 많았지.
    경주에 왕들의 무덤이 있잖은가
    근디 어느 놈은 '총'이라 부르고 어느 놈은
    '능'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를  자네는 아능가?
    총은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때 총이라 하고
    주인을 알면 능이라 한다고 울 엄니 일러 주시데.
    '워서 배웠소?나가 입을 딱 벌링께'
    나가 핵교만 지대로 나왔어도 장관까지는
    무난~히 했을기다'다시 태어나면 내 이리
    부엌데기로 바보맨치로 안 산다'하시네.

    외아들을 향한 징허디징한 사랑에 올케가 힘든 거 아네.
    우로 딸 셋 낳고 8년 만에 얻은 아들이니 오죽하겠능가.
    이쁘고 똑똑한 며느리헌티 샘도 나셨겄지.
    그래도 노인정 나가시면 며느리 자랑이 늘어지시네.
    무뚝뚝이에 잔정은 없어도 속 하난 깊은 물건을 얻었노라고.
    울 엄니 늘 갖고 다니시는 노란 수첩 봤능가.
    거기 삐뚤빼뚤한 글씨로 '메느리 생일'이 적혀 있더라만.
    딸 생일은 잊어 묵어도 며느리 생일은 기억하시지.
    서울 올라가실 때면 목욕탕 가서 어찌나 때를 빼고 광을 내시는지.
    늙은이가 냄새 풍기면 손주들 도망간다고 저리 야단을 떠시네.

    맏 시누이 잔소리가 길어졌고만.
    봄꽃 지는 것이 서러웠나 보이.
    내가 하고픈 말은 늙으신 우리 엄니,
    이 세상에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만 좀 해주시게.
    자존심 강한 우리 엄니,
    어버이날 당신 손으로 카네이션 사서 달지 않게만 해주시게.
    나도 시집살이 20년을 했지만,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나 그 엄니가 다 그 엄니 아니당가.
    시절을 잘못 만나 두 손이 거북 등 되도록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여인네들 아닌가.
    사시면 또 얼매나 사실 텐가.
    그렇게 지은 복(福) 몽땅 자네헌티 돌아가네.
    자식들헌티 돌아가네.
    그러니 올케, 우리 엄니를 좀 부탁하네.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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