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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향기찾아 보림사로
    ♠寺刹巡禮 2011. 5. 29. 17:57

    하대신라의 상징은 장흥 보림사 가지산문(迦智山門)이다.

    보림사 이후 전국 각지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유학승과 고승들이 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남원 실상사, 보령 성주사, 문경 봉암사 등 후대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고 부르는 선종사찰을 창건하였다.

    이 구산선문에는 거의 다 개산조(開山祖)의 승탑과 비가 세워졌다. 하대신라는 승탑의 세기였다. 그중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은 보림사의 '보조선사(普照禪師) 창성탑(彰聖塔)'(보물157호)이다.

    하대신라는 철불의 세기이기도 하다. 보림사에는 헌안왕 2년(858)에 봉안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117호)이 있다. 이 철불은 중대신라 경주의 불상과는 전혀 다른 현세적이고 개성적인 얼굴에 강한 육체미를 과시한다.
    중대신라 불상들의 이상적인 인간상 모습이 여기에 와서는 호족의 자화상 같은 파워풀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처럼 장흥 보림사는 하대신라의 문화적 역동성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남원 실상사의 철제약사여래불과 흡사하기도 하고 일본놈들에게 복장물을 도난당한것 또한 비슷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원표(元表)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권유로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여 선종(禪宗)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경내에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보물 제157 ·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彰聖塔)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가지산 보림사는 너무나 익숙한 절집이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꼭 외워야 하는 절집이었다. 신라 말기에 개창한 선종의 아홉 개 산문인 선종9산. 시험문제에도 잘 나온다. 선종9산이 아닌 것은? 요즘은 국사를 안 배워도 된다니….

     

    보림사는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온 절이다. 서기 759년 원표대덕(元表大德)이 터를 잡아 가지사라 하다가, 체징선사(體澄禪師, 804-880)가 가지산문의 선풍을 크게 떨친 곳이다. 헌강왕은 사호(寺號)를 보림사로 함과 동시에 동국 선종 종찰(東國禪宗宗刹)로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외호문과 천왕문을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절집은 1982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하여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나무로 깎은 사천왕상, 돌을 다듬은 삼층석탑, 그리고 철로 녹인 비로자나불

     

    외호문 지나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전인 중종 10년(1515년)에 나무로 깎아 만든 사천왕상으로 보물 1251호로 지정되었다.

    대부분 절에는 소조 사천왕상인데 비해 나무로 깎아서인지 사천왕상의 얼굴이 온화하게 보인다.

    천왕문을 지나면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너무나 아름다운 삼층석탑이 두기 서있다.

    두 석탑 사이에 석등도 있다.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상륜부가 그대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훼손된 부분이 거의 없어 삼층석탑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다 상륜부의 조각된 구름문양은 단순하면서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삼층석탑 바로 뒤로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철로 만든 부처님을 모셨다.

    이 철불은 헌강왕 2년(858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국보 제117호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이다.

    부처님의 까만 모습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절은 커다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2층 지붕을 한 대웅전이 있다. 건물은 크고 웅장하지만 내부에 모셔진 부처님은 건물규모에 비해 작다. 아마 대적광전이 따로 있어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부도탑 몸돌에 새겨진 부조는 살아서 움직이는 듯

     

    대웅전 뒤로 또 하나의 부도가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면 탑비가 있다.

    보물 158호로 지정된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다.

    보조(普照)선사는 선종 최초의 사찰인 보림사를 개창한 체징(體澄)에게 헌강왕이 내린 시호다.

    탑비에 새겨진 한자 글씨는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섬세하게 쓰인 작은 글씨는 나름 아름다움을 준다.

    탑비 위에는 부도가 서있다.

    보물 157호로 지정된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이다.

    부도탑은 여기저기 깨지고 기단부는 훼손이 심하다. 옥개석의 비례미도 조금 덜하지만, 몸돌과 기단석에 새겨진 조각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기단부 구름문양은 조각을 깊게 하여 힘찬 느낌을 주며, 팔각형 기단부의 배흘림 부드러운 곡선은 석공의 노련한 솜씨가 잔뜩 묻어난다.

    몸돌에 양각으로 새긴 신장상과 문고리 문양은 너무나 정교해서 가벼운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예전에는 엄청난 규모의 절집이었지만 지금은 불타버린 절집에 커다란 건물만 복원해 놓았다.

    커다란 마당이 너무 썰렁한 느낌이다.

    절을 뒤로한다.

    탑과 부도의 아름다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절 바로 앞으로 흐르는 봉덕계곡에는 오염되지 않은 계곡물이 천년을 고고히 흘러 탐진댐에 담수되어

    중생들에게 식수를 제공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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