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인이 백장 스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마음이 자유로운 경지를 해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백장 스님이 답합니다. "부처도 찾지 않고 지혜도 찾지 않으며, 더럽고 깨끗하다는 분별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말아야 한다."
대개 불자들은 부처가 어떻고 보살이 어떻고 하면서 늘 부처를 구하고 찾습니다. 또 지혜를 찾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며 깨끗한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분별을 두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지옥의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고, 극락의 즐거움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디에도 걸림이 없어야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이때에 이르러야 몸과 마음이 자유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부처를 찾고 지혜를 구하되 거기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장애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흔히 참선하는 사람들은, 화두와 깨달음에 얽매여 본래청정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깨달음이나 화두에 얽매여 본래청정, 본래성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수행이든 즐겁게 해야 합니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긴장하면 안 됩니다. 물론 용맹정진은 필요하지만, 용맹정진이라고 해서 기쁨이 따르지 않는다면 온전한 수행이 아닙니다. 하는 일 자체가 즐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어야 합니다. 무엇에 쫓겨서는 안 됩니다. 서산 대사의 법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수본진심 제일정진 守本眞心 第一精進.’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수행이라는 뜻입니다. 지킨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본래 청정한 마음을 써야 합니다. 지키고만 있으면 그것은 죽은 수행입니다. 또 기도하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을 열심히 부르면서도 자신이 직접 그런 보살이 될 줄은 모릅니다. 그분들은 역사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특정한 분들이 아닙니다. 누구나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고 지장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말고 나 자신이 관음의 화신이 되십시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지장보살이고, 지극한 자비가 관세음보살입니다. 마음 밖에서 찾지 마십시오. 참선하고 기도하는 주체인 마음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법구경>에도 같은 내용의 법문이 나옵니다. "마음이 들떠 흔들리기 쉽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 갖기를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하듯 한다." 남이 이 말 하면 이리 기울고, 저 말 하면 저리 기울고, 멀쩡하던 사람이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