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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다가는 다만 '문'이라고 쓰면 될 것을◑解憂所 2009. 9. 30. 06:45
문에다가는 다만 '문'이라고 쓰면 될 것을
한 스님이 수행하면서
암자 문에다가 '마음'이라고 써 놓고
창에도 벽에도 모두 '마음'이라고 써두었다.
법안스님이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문에다가는 다만 '문'이라고 쓰고,
창에는 '창' 벽에는 '벽'이라고만 쓰면 될 것을."
산은 높고 물은 넓다.
혜남(慧南)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부처님은 세상에 나와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제도하였는데,
사자좌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시렵니까?"
"'산은 높고 물은 넓다.'라는 한 구절일세."
저기 정원에 있는 돌은 그대 마음 안에 있는가?
계침(桂琛)선사가 문익(文益)스님에게 물었다.
"저기 정원에 있는 돌은 그대 마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 밖에 있는가?"
"제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行脚)하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 속에
돌맹이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는 말인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만 벗어난 것을 말하기는 어렵네경청스님이 비오는 날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의 저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너의 마음은 주객이 바뀌어
빗방울에 사로잡혀 있구나."그러자 그 스님이 경청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저 소리가 무슨 소리로 들리십니까?"
"나는 소리에 집착하는 것을 면했다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만
벗어난 것을 말하기는 어렵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원율사(源律師)라는 이가 와서 대주(大珠)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도 도를 닦는데 공(功)을 들이십니까?"대주가 말했다."그렇다. 공을 들인다."
"어떻게 공을 들이십니까?"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그렇지 않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에도
백 가지 분별을 일으키고,
잠을 잘 때에도 숱한 망상을 일으킨다.
이것이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다."이에 율사가 입을 다물었다.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道)도 없다
"선사께서는 어떤 마음을 써서 도(道)를 닦으십니까?"
대주가 대답했다."노승(老僧)에게는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道)도 없다."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道)도 없다면,
왜 날마다 대중을 모아놓고
선을 배우고 도를 닦으라 하십니까?"
"노승에게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데
어디에 대중을 모았다 하는가?"
도광이 소리쳤다.
"선사께서는 왜 사람을 앞에 놓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노승은 사람들에게 권장할 혀도 없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저는 선사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주가 말했다."이 노승도 모른다."
물 위에 비친 달 그림자는 그 모양이 여럿이지만
마조가 말했다.
"모든 법은 마음에서 유래하며,
모든 명칭은 마음의 명칭이다.
실로 모든 법이 마음에서 생기나니,
마음이야 말로 모든 법의 근본인 셈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물 위에 비친 달 그림자는 그 모양이 여럿이지만
정작 달 자체는 하나인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물줄기는 여럿이지만
물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도 없다.
수없이 많은 삼라만상이 있지만 공안에는 아무 차별도 없다.
도리를 설하는 이론은 많지만 자유자재한 지혜는 하나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하나의 마음에 근본을 둔다.
일체의 법 모두가 불법이다.
갖가지 법이 나름대로 해탈이며,
해탈은 진여와 다르지 않다.
일상생활 가운데 가고, 오고, 머물고,
앉고, 눕고하는 모든 것이 신기한 일이다.
거기엔 시간의 흐름이 필요치 않다.
경에 이르기를 '어느 곳이나 부처 없는 곳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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