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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좌(單坐)하여 수행하는 곳에 공력(功力)이 쏟는다.
    ♥일상사 2009. 8. 7. 06:38

    단좌(單坐)하여 수행하는 곳에 공력(功力)이 쏟는다.

    불도수행에 있어서 최고의 공양은 법공양입니다.
    경문이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불법의 흐름에 있어서 시대에 나타난 수행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해탈시대라 하여 부처님을 갈앙하여도 공덕이 있었습니다. 다음이 선정시대입니다. 이때에는 선(禪)을 많이 하면 공덕이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은 다조탑사시대라 하여 탑을 많이 축조하면 공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독송다문시대라 하여 불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서사하면 공력이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불도수행에 있어서는 시대마다 다른 수행을 행하였지만 나타나는 공덕은 변함이 없는 것이 불법이고 수행이었습니다.

    법화경 설법은 영추산에서 두 번 허공에서 한 번의 회좌가 있었습니다.
    불의 멸후에 법화경 유포를 누구에게 맞길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존께서는 사부 대중에게 멸후의 홍경, 홍통을 권유하시고 부처는 이 사바세계에 항상 중생과 더불어 주하신다고 설하였습니다.

    우주에 편만한 불법의 위대함은 부처의 열반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한다고 하였으며 이를 다보여래는 증명하였습니다. 법화경 회좌에서 제천선신과 귀자모신, 십나찰녀는 법화경 을 수지하는 모든 행자를 수호한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일체의 불보살. 제천선신이 불도 수행자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은 허언이 아닙니다. 불법을 지키는 것은 사람입니다.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법을 넓혀가기 때문에 수호의 맹세를 한 것입니다.
    만약 불도 수행자를 제천선신이 지키지 않고 팽개치면 제천선신은 무간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천왕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경에 불설로 명확히 밝힌 불도수행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중생들에게 공덕으로 나타나는 나는 것이 불법이고 불럭과 법력인 것입니다. 불경은 인간의 생명을, 숙업을 풀어 밝힌 인생지침서입니다. 각 경마다 비유하고 풀어서 반복하는 불경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부처님의 논술입니다. 50년 불설을 단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성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불의 의미는 ‘사고방식을 바꾼다’라는 넓은 의미의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을 하자면 ‘숙명을 전환하다’도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불경을 설한 목적은 즉 부처의 출세의 목적은 ‘인간성회복운동’입니다.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숙업으로 사회를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썽을 부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모두 하나로 아우르게 하기 위한 ‘생명존중사상’이 곧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나보다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인간성 풍부한 사회건설을 석존께서는 갈구하였던 것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한 사람으로서 대우주의 깊은 법을 쉽게 설한 부처님을 만났다는 그 자체가 공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설이 최고의 사상이고 철학이라는 것도 아울러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존중의 사상은 그야말로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삼초이목의 비유를 들면서 불우(佛雨)는 대자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부처님의 대자비가 광대무변하므로 중생 또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살기 좋은 사회건설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혼란할 때는 중생들이 모두 나서서 잘못됨을 밝히고 잠재워야 하는 사명(使命)이 있습니다. 일체대중에게 불멸후 불법 홍교를 부탁하신 불심(佛心)을 지키기 위해서 중생이 지혜와 현명함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몰라 라 하는 자세는 불제(佛弟)가 아닙니다. 더더욱 불교만을 고집하는 자세도 버려야 합니다. 이 우주에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경 팔십만억나유타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삼승(三乘)이 아니고 일불승(一佛乘)이라고 했습니다.
    불설의 깊은 뜻은 일체 대중이 곧 부처이며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승(僧)이 불법을 유포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세(末世)의 의미는 사부대중이 승(僧)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단좌하여 불경을 독송하고 명호를 부르면 공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설에 있으므로 당연히 공력이 나타나는 데에도 아직까지 스스로의 수행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괴로우면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삼아 산에서나, 들에서, 집에서 수행하여도 되는 것입니다. 타리(他利)를 두고 기원을 하면 자리(自利)는 저절로 해결되는 공력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 불력이고 법력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편만해 있는 불력과 법력은 기원하는 수행에서만 나타나며 불설에 벗어나면 부처님은 예(禮)를 받지 않습니다(非禮).
    지금까지 많은 수행방법을 두고 불설에 맞았는지를 새삼 돌이켜 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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