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가슴을 키운다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미리 써 놓은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문호 죠지 버나드 쇼가 1950년 오늘(11월 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정원의 나뭇가지를 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졌습니다. 그래도 향년 94세였으니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죠?
쇼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16세 생일 직전에 극단의 가수였던 어머니가 노래 스승과 눈이 맞아 두 누이를 데리고 런던에 가는 바람에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겨우 기본적인 공부를 마치고 부동산 사무실의 급사를 하다가 4년 뒤 런던에 가서도 용돈을 벌기 위해 신문 칼럼을 대필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그의 피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유머가 흘렀습니다. 그는 낭만적 사회주의자로 ‘페비언 협회’의 일원이었습니다. 남녀의 정치적 평등과 근로자의 인격, 건강권의 확대, 토지 공개념 등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부패한 소수가 정하던 것을 무능한 다수가 대체했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쇼는 평생 25만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그 중에는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과의 편지도 있습니다. 덩컨이 “당신의 머리와 내 몸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굉장하지 않을까요?”라고 편지를 보냈더니 쇼는 “거꾸로 내 육체와 당신의 머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끔찍할지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답장을 씁니다.
쇼는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입니다. 그는 노벨상을 받으면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문학상을 생각해낸 것은 참 말이 안 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열렬히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관련이 있는 ‘피그말리온’이란 연극의 극본을 썼고, 이것을 영화화한 오드리 헵번 주연의 ‘MY Fair Lady’로 오스카상을 받았습니다.
쇼는 뮤지컬 공연 때 한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형편없는 공연을 중단하라”고 외치자, 웃으면서 공손하게 말합니다. “손님의 작품 평가에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 작품은 형편없습니다.”
그리고 관중을 둘러보며 “손님,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 생겼습니다. 손님과 나, 두 사람이 저 많은 사람의 열렬한 박수와 찬사를 막을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관중의 폭소와 우레 같은 박수가 뒤이었고 그 청년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버나드 쇼의 유머에서 자존감을 봅니다. 요즘 저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은 작은 비난에도 참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하곤 합니다. 예술가나 대중문화 종사자가 평론가의 당연한 비평에도 발끈합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비판에도 참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의 열등감이 상처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가슴이 크다면 비판을 적극 수용하거나 유머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평소 유머를 즐기면 자존감이 커집니다.
오늘부터 새뜻한 유머로 남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가슴을 키우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