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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들이 갖는 '가면우울증'
    ♨wellbeing,건강 2008. 3. 19. 07:20

    남편들이 갖는 '가면우울증'

     

    동기들은 모두 부장을 달았는데 이번 승진발표에 김 차장 이름은 빠졌다. 사무실에 들어간 김 차장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얘기하다가도 그가 나타나자 눈치를 본다는 느낌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가 받았을 상처를 배려하는 듯한 그 애매한 공기가 그를 더 괴롭게 했다.

    맘 편히 있을 곳이란 회사내에 한 군데도 없는 것 같았다. 김 차장은 화장실로 갔다. 옷입은 채로 변기 위에 앉아 있다보니 2시간이나 흘렀다. 옆에 놓인 화장지를 우두커니 보다보니 ‘내 인생은 휴지로 쳐도 크리넥스가 아니고 화장실에나 있는 두루마리 휴지인거야’ 하는 비참함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을 남자답지 못하게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며칠 후 부서의 회식자리. 그는 확실히 오버했다. 2차로 간 노래방에서는 넥타이까지 풀어 머리에 질끈 묶고는 나훈아의 ‘건배’를 선창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처음엔 팀원들도 어색해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모두 함께 어울려 광란의 밤을 보냈다. 새벽에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퇴근후에는 집에서 온라인 게임하는 것에 맛을 들였다. 게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 밤새워 게임을 하다가 새벽에 헬스클럽으로 바로 가기도 했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생활하던 그가 어느날부터 이유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빠져들어 정신과 상담실을 찾았다.

    김 차장의 병명은 ‘우울증 (depression)’.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사람 대부분의 진단명이 우울증이라 해도 과언 이 아니다. 내과로 치면 감기만큼 많은 것이 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심리적인 감기’ 인 것이다. 매사가 그저 그렇고 뭐하나 재미있는 게 없다, 뒷목이 뻣뻣하다,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 우울증의 공통적인 증상이다.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데도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된다. 눈이 침침해지기도 한다. 특히 수면상태의 변화가 특징적인데 불면증이나 정반대의 과다수면이 나타나기도 하고 자기는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치 않아서 더 자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일반적인 증상은 남자나 여자에게 비슷하게 드러나지만 여자와 달리 남자의 우울증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남자의 우울증은 대부분 ‘가면 우울증(masked depression)’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은 우울증인데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것. 김 차장처럼 남자들은 심각하게 우울할만한 상황에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건 감정적으로 약해빠진 여자들에게나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우울증을 마치 주부습진처럼 여자들의 전유물로 여긴다. 남자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계집애 같으면 큰일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이버 주식이나 온라인 게임, 일이나 도박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남자들 중에는 우울증이 내면에 깔려 있는 사람이 많다. 지나친 열정과 낙관은 우울증의 또다른 얼굴일 수 있다. 우울증이란 좌절을 겪었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반응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생로병사라는 좌절을 피할 수 없으므로 모든 사람은 잠재적 우울증 환자라고도 볼 수 있다. 남자도 인간인데 예외일 수 있겠는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가면우울증’은 남자들의 고독을 가중시키고 마음의 상처를 깊게 만든다. 저 깊숙한 곳에서 용암이 들끓고 있는 휴화산(休火山)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의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도 가면은 빨리 벗을수록 현명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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