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시장에 가면 생선가게 아주머니들이 목청껏 호객을 하는 가락 속에서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봄 조개 가을 낙지’ 등을 흔하게 들을 수 있을 게다. 계절에 따라 달이 차고 지면서 찾아오는 생선을 잡아 요기를 하고, 곡식과 옷감으로 바꾸는 등 바다에 의지해 삶을 꾸려온 바닷가 어부들은 일찍이 어느 달에 어떤 생선이 맛이 좋은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매달마다 생선과 관련된 속담이 있으니 말이다.
정월은 도미를 최고로 친다. 낚시인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도미는 생선 중 귀족으로 ‘백어(白魚)의 왕’으로 여겨왔다. 도미는 산지(産地)에 따라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머리부분의 맛은 최고로 알려져 있다. 어두일미(魚頭一味)는 도미의 머리부분이 가장 맛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또 '5월 도미는 소껍질 씹는 맛보다 못하다', '2월 가자미 놀던 뻘 맛이 정월 도미 맛보다 낫다'는 등 다른 생선의 맛과 비교할 때 인용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홍선표의 조선요리학에는 ‘도미는 원래 사람이 길들이기 쉬운 물고기이며, 유연한 것이면 무엇이든 잘 먹는다. 물이 너무 차면 힘을 못쓰고, 먹는 것도 싫어하고, 겨울잠을 잔 뒤 깨어나면 무엇이든 탐식하므로 가장 맛있는 시기는 봄철에서 알을 낳는 여름철 사이’라고 했다.
2월에는 가자미다. 한자어로 비목어(比目魚)라 하는 가자미는 회무침 맛이 일품이다.
“가자미 놀던 뻘 맛이 도미 맛보다 좋다’니 진짜 가자미 맛은 얼마나 좋을지 기대해 봄직하다. 양력으로 3월 경에 전남 신안군과 진도군 일대에 갈 기회가 있거든 꼭 가자미 무침회를 맛보길 권한다.
3월은 조기다. 조기는 예로부터 관혼상제에서 빠지지 않는 생선이었으며 조깃살로 만든 죽은 어린아이와 노인들의 영양식으로 애용된 생선이다.
명태가 동해안을 대표했다면 조기는 서해안에서 첫 손에 꼽히는 생선으로 조기에 관한 속담도 많다. “3월 거문도 조기는 7월 칠산장어와 안 바꾼다.”는 속담은 남해에서 잡히는 조기도 맛이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해 7월 칠산바다(서해안 영광 앞바다) 장어와 비교한 것.
이밖에 몹시 소란스럽다는 뜻의 “강경장(江景場)에 조깃배 들어왔나” 라는 속담과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는 옛말이 있다. 칠산 어민들은 법성포 구수산 철쭉이 떨어지거나 인근 섬 위도의 늙은 살구나무에 꽃이 피면 참조기가 알을 낳을 때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정확하게 때를 맞추어 모이는 생선으로 여겨진 조기는 이 덕분에 어부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됐을 정도란다. 그래서 조상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며 욕을 하기도 했다.
4월은 삼치다. “4월 삼치 한 배만 건지면 평양감사도 조카 같다”는 속담이 있다. 봄(3∼6월)에는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삼치는 4월경에 맛이 좋아 높은 가격에 팔렸으며, 어획량이 많을 경우 한밑천 톡톡히 건지는 생선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5월은 농어가 제철로 얼마나 인기가 좋으면 “보리타작 농촌 총각 농어 한믓(보통 10마리)잡은 섬처녀만 못하다.” 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생선 값이 뛰면서 나타나는 말로 이 같은 현상은 오늘날만 있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농어는 <난호어목지>에 ‘깍정’이라 하였고 <아언각비>에서는 농어(農魚)라 하였다. <자산어보>에서는 농어를 걸덕어(乞德魚)라 하였다.
6월은 숭어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에도 숭어 비늘국 한 사발 마시면 정승보고 이놈한다”는 속담을 통해 농어의 맛과 포만감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숭어는 계절별로 자라는 상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의 숭어(모찌)도 일품이다.
<자산어보>에는 치어라 기재하고, 숭어의 형태·생태·어획·이명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 작은 것을 속칭 등기리(登其里)라 하고 어린 것을 모치(毛峙)라고 한다.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서 제1이다.”라고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건제품(乾製品)을 건수어(乾水魚)라 하며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소비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산 숭어 중에는 영산강 하류 수역에서 잡히는 것이 숭어회로서 일품이다.
7월은 장어다. ‘숙주에 고사리 넣은 장어국 먹고 나면 다른 것은 맹물에 삶은 조약돌 삶은 국맛 난다”고 표현했다. 또 “7월 칠산장어”가 조기와 비교된 속담을 통해서 장어는 서남해안 모든 지역에서 나고 특히 7월에 맛이 좋았음을 엿볼 수 있다.
8월은 꽃게다. “8월 그믐게는 꿀맛이지만 보름 밀월게는 개도 눈물 흘리며 먹는다.”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긴 이 속담을 보면 정말 대단한 관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는 달이 밝으면 먹이를 노리는 천적들 때문에 활동을 못한다. 달 밝은 밤에 게는 며칠을 굶으며 활동을 못하다보니 껍데기만 남아 너무 맛이 없어 견공도 눈물 흘리면 먹는 다는 표현이 해학적이다.
9월은 전어다. 전어와 관련된 속담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그릇 죽인다.” “ 전어 머릿속에 깨가 서말” “전어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등의 속담이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 전어는 특히 가을이 제철이라 맛이 최고조에 달하고, 이 때가 되면 ‘전어축제’도 열리니 전어를 찾아 가을별미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10월은 갈치다. 특히 갈치에 관한 속담은 생선을 육류(고기)와 비교한 게 독특하다.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 보다 높다.”는 속담이 있다.
칼치·도어(刀魚)라고도 한다. 《자산어보》에서는 군대어(裙帶魚)라 하고 속명을 갈치어(葛峙魚)라 하였으며 《난호어목지》에서는 갈치(葛侈)라 하였다.
제주 은갈치와 목포 먹갈치가 유명한데 종류가 다른 게 아니고 낚시로 잡은 게 은갈치고 그물로 잡은 게 먹갈치며 회는 은갈치로만 뜬다.
11월과 12월은 대부분의 생선이 맛있는 계절로 가려 먹을 것이 없다는 의미로 특별한 생선에 관한 속담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밖에 ‘썩어도 준치’와 같은 생선의 맛에 관련된 속담과 ‘말짱 도로묵’ 등 생선의 유래에 관한 옛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 “꼬시래기 제살뜯기” “노가리 푼다” “밴댕이 소갈머리” 등 풍자적 의미의 속담과 함께 생선의 생태를 묘사한 “고래등 같다” “복어 이갈 듯 하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등의 속담도 있다. 이처럼 요즘에도 흔하게 쓰이는 생선관련 속담 사례들을 통해 숨은 의미를 찾아보자.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은 원래 본 바탕이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 낡고 헐어도 그 본 품을 잃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성품이 올곧은 사람은 곤경에 빠지더라도 본질이나 생각이 변치 않는다는 말을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준치는 예로부터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선물로 자주 씌였다. 권력이나 명예, 재물에 너무 치우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훈계를 해줄 때 준치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낸 것이다. 이는 준치가 매우 맛있는 생선이지만 잔가시가 많아 맛있다고 마구 먹어대다가는 목에 가시가 걸리기 십상이므로 지나친 음식욕심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좋은 일에는 방해하는 사건이나 귀찮은 일거리도 많아 무슨 일이나 다 좋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맛 좋은 준치가 가시도 많다.’는 말도 있다.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 헛고생을 했을 때 ‘말짱 도루 묵’이란 말을 흔하게 사용한다. 열심히 했지만 결국에 모두 헛일이 됐다는 의미다.
도루묵이라는 생선은 그 이름에 담긴 유래도 재미나다. 도루묵은 원래 ‘묵’ 또는 ‘목어’라고 불리는 동해에 사는 생선이었는데 조선시대 선조가 함경도로 피난 갔을 때 한 어부가 ‘묵’이라는 물고기를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이 먹어보니 이 물고기가 너무 맛이 좋아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임금은 피난 때 먹은 은어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청했으나 그 맛이 예전과 달라 도로 ‘묵’이라 부르도록 했고 그래서 ‘도로묵’ 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명태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아주 친밀한 생선이다. 그러다 보니 명태와 얽힌 이야기와 속담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가리’. 말이 많거나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흔히 ‘노가리를 푼다’ ‘노가리를 깐다’는 식으로 사용되는데 원래 명태의 새끼를 일컫는 ‘노가리’는 한꺼번에 수많은 알을 낳는 명태처럼 말이 많다는 의미로 풍자적인 표현이다.
또 몹시 인색한 사람의 행동을 조롱할 때 ‘명태 만진 손 씻은 물로는 사흘 동안 국을 끓인다’는 말을 쓰고, 변변치 못한 것을 주면서 큰 손해를 입힌다는 의미로 ‘북어 한 마리 주고 제사상 엎는다’고 했다.
눈 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다 더 큰 손실을 자초하는 한심한 행동을 할 때 ‘꼬시래기 제살 뜯기’란 말을 한다. 꼬시래기는 문절망둑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로 지방에 따라서 망둥이, 망둥어, 문절이, 운저리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또 같은 종족도 서슴없이 먹잇감을 삼는 망둥이의 습성에 빗대 친 한 사람끼리 서로 헐뜯고 해치는 경우에 ‘망둥이 제 동무 잡아먹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망둥이는 너무 흔하다 보니 무시와 푸대접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던 모양이다. ‘망둥이가 뛰니까 전라도 빗자루도 뛴다’는 속담이 이를 대변한다. 아무 관련도 없고 그럴 처지도 못 되는 사람이 덩달아 날뛴다는 말로 어중이떠중이 모두 나설 때 쓰는 표현이다.
좋은 기회란 원한다고 해서 매번 오지도 않고 언제나 자기 마음에 드는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장마다 망둥이 날까’라는 속담도 있다.
우리는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을 두고 ‘저 밴댕이 소갈머리(소갈딱지)’라며 혀를 찬다. 속이 좁다는 것은 마음이 좁다는 말로 성질 급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생선이 바로 망둥이 이기 때문. 그물이나 낚시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몸을 비틀다가 다 잡혀 올라와선 파르르 떨면서 죽어버리니 오죽하면 ‘성질 급한 밴댕이는 화가 나면 속이 녹아 죽는다’는 말이 있을까. 비슷한 뜻으로 밴댕이 콧구멍 마냥 몹시 소견이 좁고 용렬한 사람을 두고 하는 ‘속이 밴댕이 콧구멍 같다’는 말도 있다.
우리 속담 가운데 원통한 일을 당하거나 원한을 가지고 이빨을 빠득빠득 갈 때 ‘복어 이 갈 듯 한다.’는 말이 있다. 복어는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이빨을 빠득빠득 갈며 성을 내고 배를 잔뜩 부풀리기 때문에 진어(嗔魚) 또는 기포어(氣泡魚)로도 불리는 것에서 유래된 속담이다. 또 ‘복어 한 마리에 물 서 말’ 이라는 속담은 복어가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는 맹독을 없애기 위해 복어요리를 할 때는 많은 양의 물로 피를 충분히 씻어 버리라는 의미다. ‘복어 알 먹고 놀라더니 청어 알도 마다한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복어 알을 먹고 얼마나 혼쭐이 났으면 맛있는 청어알도 거절하겠느냐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말에 ‘메기잔등에 뱀장어 넘어가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뱀장어가 미끄럽지만 메기도 미끄럽기는 매한가지. 그러니 미끄러운 메기 잔등을 미끄러운 뱀장어가 넘어가니 오죽 잘 넘어 가겠는가. 이는 슬그머니 얼버무려 넘어가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서양에도 ‘뱀장어 꼬리를 붙잡다’는 말이 있다. 미끄러운 뱀장어 꼬리가 잡힐 리 없다. 이 말은 ‘무슨 일을 잘못 된 방법으로 시작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 ‘뱀장어 눈은 작아도 저 먹을 것은 다 본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아무리 식견이 좁은 자라도 저 살 길은 다 마련하고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속담 속에 숨은 풍자적 의미와 생선의 유래 등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나면 밥상에 오른 생선음식 맛이 더 각별할 듯 싶다. 속담에 나타난 생선이야기를 통해 생선의 의미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고 생활의 지침을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