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많이 쓰는 우리말 표현 중에는 정작 어원을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분위기, 사실 등을 나타내는 관용구나 속담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 뜻을 거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원을 알고 쓰면 더 재미있고 감칠맛이 나는 게 우리말이 지닌 매력이다.
지금까지 우리말 어원 관련 도서들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적당하다. 그 중에서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1·2’(조항범 지음, 예담, 2004)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재운 편저, 책이있는마을, 2003)은 우리가 자주 쓰는 관용구의 어원을 속 시원하게 밝혀준다.
“쥐뿔도 모르는 게”
뿔 달린 쥐는 없다. 그렇다면 ‘쥐뿔’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옛날 커다란 쥐가 사람을 내쫓고 주인 영감 행세를 하자, 가짜로 여겨져 내쫓긴 주인이 억울해서 스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스님이 알려준 대로 고양이를 풀어 쥐를 내쫓은 주인은 부인을 앉혀놓고 ‘쥐좆도 모르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쥐뿔’이 ‘쥐불’의 변형이고 원래는 ‘쥐의 불알’에서 왔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이야기이다.
쥐도 작은데 쥐의 성기는 아주 작을 것이라는 데서 ‘쥐뿔’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쥐뿔도 모르는 것이니, 앞뒤 분간도 못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종종 쓰는 비속어이지만 사실은 은근히 야한 말이다.
“맥주 한잔 하면서 노가리나 깔까?”
수다를 떨거나 그럴듯하게 이것저것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노가리를 까다’라고 한다. 노가리는 명태의 새끼. 흔히들 노가리 껍질을 벗겨가며 시끄럽게 잡담을 하며 술을 마시는 풍경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노가리를 까다’는 명태가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새끼를 까는 데서 유래한다. 이렇게 명태의 새끼인 노가리의 수가 많다는 데서 말을 많이 하다는 비유적인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또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많이 하고 그만큼 진실성도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다라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한다. 노가리를 잘 까는 사람은 재미는 있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곱살이 끼지 마”
남이 하는 데 끼어서 어떤 일을 쉽게 하려는 것을 가리키는 말. 흔히 ‘꼽사리 끼다’라고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곱살이 끼다’는 노름판에서 유래한 말이다. 노름할 때 판돈을 대는 것을 ‘살 댄다’라고 하는데, 밑천이 부족하거나 패가 좋지 않아 쉬고 있다가 패가 좋은 것이 나올 때 살을 댄 데다 또 살을 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곱살’이라고 한다. 자기 힘으로 하려 하지 않고 남의 노력에 쉽게 묻어서 가려는 얄미운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말짱 도루묵이지”
도루묵은 물고기의 이름이다. 이 말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피란길에 오른 선조가 처음 보는 생선을 맛보고는 그 맛이 너무 좋아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 생선의 원래 이름은 ‘묵’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맛을 잊지 못한 선조가 그 생선을 다시 먹어보았지만 그 맛은 온데간데 없었다. 결국 선조는 “도로 묵이라 불러라”고 명했다고 한다.
재미는 있지만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물고기의 원래 이름은 ‘목’이었고 그 앞에 붙은 ‘돌’은 돌배, 돌복숭아에서처럼 맛이나 모양이 좋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돌목’은 목이라는 물고기 가운데서도 질이 떨어지는 물고기. 결국 힘들게 그물질해 건져 올렸으나 별 이득이 없으니 ‘헛수고’를 한 셈이다.
“저 어리버리 또 왔냐?”
‘어리버리하다’는 요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원래는 ‘어리바리’가 표준어. ‘어리바리’는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어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을 뜻한다.
먼저 ‘어리’는 중세국어에서 ‘어리석다’라는 뜻으로 쓰이던 ‘어리다’의 어간이 부사화한 것이다. ‘바리’는 어원을 규명하기가 어렵다.
요즘은 ‘어리버리’라는 말이 훨씬 많이 쓰인다. 행동이 굼뜨고 좀 모자란 사람을 가리켜 ‘어리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기가 스스로를 ‘어리버리하다’고 할망정 남에게 들으면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다.
“아, 쪽팔려”
부끄럽거나 민망한 상황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쪽팔리다’에서 ‘쪽’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듯이 ‘얼굴의 한쪽’이나 ‘얼굴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쪽팔리다’는 ‘얼굴이 팔리다’라는 뜻이다. 그리 점잖은 표현은 아니어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잘못 썼다가는 정말로 체면을 깎일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게 상책이다.
한편 ‘쪽을 못 쓰다’에서 ‘쪽’은 족(足)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씨름판에서 나온 것. 상대에게 배지기로 들렸을 때 자신의 발등을 상대의 종아리에 대면, 상대가 더 들지도 내려놓지도 못하고 힘만 빼면서 애를 먹는다. 이런 기술을 ‘발쪽을 붙인다’라고 하는데 그런 기술도 못 써보고 당한 상황처럼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것을 뜻한다.
“재수 옴 붙었네”
되는 일도 없고 도무지 재수가 없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혹은 막 뭔가를 시작하려는데 싫은 사람이나 훼방꾼이 끼어들었을 때 운이 막혔다는 뜻으로 쓴다.
‘옴’은 원래 옴벌레가 옮기는 전염성 피부병을 일컫는다. 이 병은 한번 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이나 겨드랑이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악성 피부병이라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나쁜 일이나 사람에 빗대어 많이 쓰인다. 덜 할수록 좋은 말이라 할 수 있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고 있네”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면서도 뒤에서는 온갖 짓을 다한다는 것을 뜻하는 속담. 옛날 매우 가난한 선배가 살았다. 어느 날 선비가 밖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자 아내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다 황급히 엉덩이 쪽으로 숨겼다.
자기 몰래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에 선비가 아내를 추궁했다.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호박씨인 줄 알고 까먹으려 했는데 쭉정이더라구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속담의 유래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사실 호박씨를 까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물며 뒷구멍으로 까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속담은 뒷구멍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요리조리 무슨 일을 은밀하게 꾸미고 있다는 뜻이다. ‘호박씨 까다’는 ‘안 그런 척 내숭을 떨다’라는 의미로, 이 속담의 의미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시치미를 떼 봐야 소용없어”
‘시치미를 떼다’는 알고도 모르는 척, 하고도 안한 척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이 말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려시대 때 매사냥이 성행했는데 매사냥 인구가 늘다보니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매에 특별한 꼬리표를 달아 표시했는데 그것이 ‘시치미’였다. 이 시치미를 떼버리면 누구의 사냥매인지 알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살다 보면 시치미를 떼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기왕이면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또 삼천포로 빠졌네”
이야기를 한참 잘 하다가 곁길로 빠지는 것을 ‘삼천포로 빠지다’라고 한다. 삼천포(三千浦)는 사실 경남 진주 아래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이름이다. 지금은 사천시로 바뀌면서 그 이름이 사라진 상태.
한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 장사를 망쳤다거나 부산에서 기차로 진주에 가는데 기차를 잘못 갈아타서 삼천포로 가게 되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유래설이 전해진다.
원래는 ‘길을 잘못 들다’라는 뜻이지만 무슨 일을 하다가 엉뚱하게 다른 일을 하거나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삼천포에서 가서는 ‘잘 나가다가 샛길로 빠지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할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