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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무공과 진남관
    ☞2012엑스포 도시 여수 2007. 10. 1. 07:39
     

    全羅左道 水軍節度使塋

    조선조 초 왜적의 침략이 경상도 뿐만 아니라 전라도지역까지 빈번해지자 전라도 해안 방비의 필요성을 감안하여 전라수군절도사영을 좌우로 분할 개편함에 때라 서해안 진충 및 전라도 길목에 위치한 여수는 성종 10년(1479)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의 설치를 하게 되어 일제에 의해 고종32년(1895)페영될 때까지 400여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 존속하였다.


                   좌 수 영 기 구 표 *임진왜란당시


     

    전라좌도절도사영

     

    좌수사(정3품)

    5관(五官)

     

     

    오포(五浦)

    순천도호부

     

     

    방  답  진

    도호부사(종3품)

     

     

    첨사(종3품)

     

     

     

    돌산읍군내리

    낙안군(승주)

     

     

    사  도  진

    군수(종4품)

     

     

    첨사(종3품)

     

     

     

    고흥점암여호리

    보  성  군

     

     

    발  포  진

    군수(종4품)

     

     

    만호(종4품)

     

     

     

    고흥도화내발리

    광  양  현

     

     

    녹  도  진

    현감(종6품)

     

     

    만호(종4품)

     

     

     

    고흥도양녹동읍

    흥양현(고흥)

     

     

    여  도  진

    현감(종6품)

     

     

    만호(종4품)

                                               고흥점암여호


    진남관(鎭南舘)

    -국보제304호(2001. 4.17)

    -소재지: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

    이건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本營)으로 사용하던 곳에 임진왜란뒤인 선조32년(1599)삼도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객사(客舍)이다.그후 숙종42년(1716)에 소실된 것을 이제면이 재건하였고 그후 여러번 중수 하였다.

    1910년 여수보통학교를 시초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교 교실로도 사용한바 있다. 이 객사는 원래 역대 임금의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초하루,보름날 망궐례(望闕禮)를 지내던 곳으로 건물 높이는 14m, 길이가 75m로서 둘레 2.4m의 큰기둥이 68개나 서 있는 동양최대의 단층목조 건축물이다.

    공포(栱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기둥사이에는 화반(花盤)을 배치하여 주심포(柱心包)양식을 이루면서 익공계(翼工系)의 수법도 아울러 갖고 있다. 출목(出目)은 외2출목(外二出目)으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쳤으며 용마루 합각마루와 추녀마루는 모두 양성으로 하였다.

    진남관 정면에 있는 망해루(望海樓)는 좌수영의 본영 진남관 문루 역할을 하였으나 일제 강점시 철거 되었던 것을 1991년 4월 복원한 2층 누각이다.

    당신 망해루 앞까지 바다였다고 함.

    [진남관 도깨비문양 화반]

     

    [진남관 龍]

     

    麗水石人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소재지: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

    이석인(石人)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등의 조선이 한창일 때 왜적들의 공세가 심하자 그 침공을 막아내기 위하여 석인 7구를 만들어 세워 의인전술(擬人戰術)의 일환책으로 삼아 승전을 이끌었다고 전해오는 석조물이다. 기단석위에 사람만한 크기의 석인을 화강암으로 만들어 세웠는데 관을 쓰고 유유히 적을 바라다보는 듯한 모습이다.

    7구의 석인상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6구는 없어지고 현재 1구만 진남관 경내 정면에 남아 있다. 전체 높이는 2m이다.

    左水營 大捷碑 및 墮淚碑

    -보물제571호(대첩비),제1288호(타루비)

    -소재지: 여수시 고소동 620번지

    좌수영 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옥포․노량․한산․명량등지의 해전에서 일본수군을 격파하여 나라를 지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드높은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광해군 12년 (1620)에 건립 하였다. 이 비문은 백사 이항복이 짓고 남창 김현성이 글을 쓰고 선원 김상용이 전자를 쓴 것이다. 또 이 비의 돌은 일찍이 이순신의 부하였고 후일에 제5대통제사를 지낸 유형이 황해병사로 가있으면서 황해도 강음땅의 돌을 구하여 실어 보내오고 전라좌수사 안륵의 진력으로 좌수영 서문밖(여수시 충무동 216)에 세워졌던 것인데 그후 이 비는 1942년 일인 경찰서장에 의해 유실 되었던 것을 경북궁안 근정전 뜰안에서 찾아내 1948년 현 고소대에 다시 세웠다(높이 3.06m, 폭 1.2m)


    타루비는 선조36년(1603)에 이충무공의 막하에 있던 수졸들이 장군의 거룩한 덕을 눈물로 흠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광해군12년(1620)좌수영 대첩비가 건립되자 그옆으로 옮겨 세웠다. 그후 이 비 또한 일제 강점시에 행방불명 되었던 것을 해방후 경복궁에서 찾아 다시 세운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영하의 수졸들이 통제사 이순신을 위하여 짤막한 비석을 세우니 이름하여 타루라 하였다. 이 비를 세운 사람은 중국 양양사람 양고의 덕화를 삼모하여 세우게 된 고사를 이용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은 비를 바라볼때마다 은혜에 감탄하여 눈물을 흐르게 되었더라.”라고 새겨져 있다.

    곁에 있는 기실비(紀實碑)[동령소갈비]는 광해군 12년(1620)현감 심인조가 대첩비 및 타루비의 건립 경위를 적은 비이다. 그후 숙종 24년(1698)은 유성채 좌수사가 마모된 것을 탁마할 때 영부사 남구만의 음기도 새겼다.


    忠愍祠

    -사적제381호(1993. 6. 1)

    -소재지: 여수시 덕충동 1808번지

    이 사당은 임진왜란때 해전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주향으로 하고 의민공 이억기, 좌찬성 안흥국을 배향하고 있다.

    이순신(1545~1598)장군의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선조 9년(1576)에 무과에 급제한 후 조산많, 정읍현감,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역임 하였다. 그가 수군절도사로 있을때 장차 전쟁이 일어날 것을 에측하고 거북선을 만드는등 만반의 대비를 하였음은 너무도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당포,한산도,부산포 해전에서 일본수군을 격파하여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선조 31년(1598)도망가는 왜적을 노량에서 섬멸하던 중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억기(1561~1597)장군의 자는 경수,시호는 의민이다.

    17세때 무과에 급제한 후 경흥부사등을 역임 하였다.임진왜란때는 전러우수사가 되어 이순신 장군과 연합하여 여러 해전에서 크게 승리 하였다. 선조30년(1597)정유왜란때 해전에서 전사 하였다.

    좌찬성 안흥국(?~1597)장군의 자는 신경, 시호는 충현이다.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 하였다.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의 막료로 있으면서 여러 해전에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때 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고 전사 하였다.

    이 사우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선조 34년(1601)에서 세분장군의 구국충정을 기리도록 하자는 영의정 이항복의 제청에 따라 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사액사당 최초이다. 그후 우부승지 김상용이 계청하여 사액이 내려졌다.

    고종 5년(1868)에 내려진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고종 10년(1873)에 다시 세워졌다.

    옆에는 임진왜란당시 승군을 훈련한 조계종 석천사가 있다.

    호국의 성지 석천사는 이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민사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충민사는 임란 칠년 동안 이충무공을 따라 다닌 박 대복이란 사람이 그의 충절에 감동하여 여수 마래산 중턱에 몇 칸의 사옥을 창간하였 습니다. 이후 1601년 선조 때 오성 부원군 이 항복의 제안으로 통제사 이 시언이 맡아 서 완공을 하였습니다.


    승군을 이끌고 이충무공의 진중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자운스님은 충 무공이 돌아가신 후에 노량에서 쌀 육백 석으로 수륙제를 베풀고 충민사에서 성 대하게 제를 올렸습니다.

    또한 옥형 스님은 임란에 이충무공을 따라 주사로 있으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다가 이충무공이 돌아가신 후에는 충민사에 살면서 정사(석천사)를 짓고 제를 지내었습니다.


    그 후 선비들이 옥형 스님의 높은 뜻을 기려 재산을 내어 암자를 지었습니다. 사당 뒤에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아래 석천(돌샘)이 있기에 절 이름을 석천사라 칭하였습니다. 지금도 석천사에는 자운 스님의 영정과 옥형 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ㆍ지정번호

    : 국가 사적 제 392호

    ㆍ소재지

    : 여수시 시전동 708

    ㆍ규모

    : 18,541㎡

    ㆍ시대

    : 조선 선조 (1591)

    ㆍ지정연월일

    : 1995년 4월 20일

    선소는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조선 기술(造船技術)을 지닌 나대용(羅大用)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거북선은 여수 지역에 있던 본영 선소, 순천부 선소 및 방답진 선소 세 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난중일기(亂中日記, 1592)에 의하면 순천부 선소는 임란 전에 생겨 임진왜란 중 전라좌수영 관하 순천부의 수군 기지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하나 만들어진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760)에 "輿地圖書 長生浦 在府東六十里 本府戰船所泊"라는 기록과 같은 책 순천부 지도에 현재 선소 자리에 '船所'라는 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순천부 선소는 장생포에 있고 장생포는 선소가 있는 포구를 가리키고 있다. 또한, 규장각에 소장된 「順天府 古蹟(1871)」고지도에는 현 위치에 '船所'라고 표기하고 「自邑東距六十里 」라는 路程을 기록하고 있으며 長城마을도 나타나 있다. 또 이 지도에 나타난 선소 시설로는 선소창(船所倉), 수군기(水軍器)가 있을 뿐 구전되어 온 세검정(洗劍亭)은 보이지 않고 바다에 전선 2척이 그려져 있다.

     

    ㆍ지정번호

    : 문화재 자료 제 39호

    ㆍ소재지

    :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4

    ㆍ규모

    : 목조 3동

    ㆍ시대

    : 고려 명종(1172)

    ㆍ지정연월일

    : 1984년 2월 29일

    은적암은 중봉산 중턱에 있으며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남면 금오도에 송광사를 짓고, 순천 선암사를 오가면서 중간 휴식처로 세웠다고 하는데, 암자 뒤편에 있는 바위가 병풍을 두른 것 같으며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계곡을 흐르는 물이 밤이면 큰 물소리로 들릴 정도로 조용하여 은적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숲 속에 있는 작은 암자이기는 하나 절 안에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명루ㆍ칠성각ㆍ요사체가 있다.

    은적암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1656년 건물을 다시 지었고, 1776년 11월에 부서진 재목을 다시 모아 이듬해인 1777년 1월 24일 상량을 했다. 이 불사에 참여한 사람들로 본진사도주 수군절제사 최도민, 전 별장 옥필흥, 박세보 등이 기록에 나타나 돌산 방답진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은적암에는 1656년 중창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목불이 있다.

     

    李良將軍 防倭築堤碑

    -소재지: 여수시 군자동 472 진남관 경내

    이량장군은 전라좌수영이 설치된후 최초의 수사로 연산군3년(1497)에 외적의 침략이 심하자 이들의 침입을 봉쇄하기 위하여 장군도와 육지사이 해협을 암석으로 축성하여 적선의 운항을 방어하여 왜구의 침범을 근절 시켰다.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21년(1643) 그의 5세손 이배원이 이량장군 방왜 축제비를 세웠는데 그후 마모가 심하자 숙종36년(1710) 8세손 이삼이 중건하였다.


    影  堂

    -소재지: 여수시 봉산동 수산물 공판장 옆

    여수지방의 해신사당이다.임진왜란전까지는 고려조 충신 최영장군을 모시다가 임난후 충무공 이순신을 주벽으로 하고 녹도만호 이대원, 녹도만호 정운 양위의 영정을 모시었으나 1943년 일제에 의해 철폐된후 4위의 영정중 최영, 정운의 영정은 일본경찰이 소각해 버렸으며 이대원의 영정만은 이우헌이 소장하고 있었고 이충무공의 영정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현재는 4위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5월 5일 풍어제를 올리고 있다.


    거북선

    임진왜란때 이순신이 사용한 철갑선(태종실록)15년 초에 그때 이미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순신이 이를 개량하여 만들어 쓴 것이라는 설, 그의 부장 나대용의 창의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1591년(선조24)에 이순신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임지인 순천부의 영지에 부임하자 임진왜란이 있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이에 대비키 위해 창안한 것이라 한다.

    이순신의(난중일기)에 의하면 여수 앞바다에서 거북선이 진수한 것은 1592(선조25)3월27일 이요 이에 장치한 지자포(地字咆),현자포(玄字咆)를 시사하여 거북선이 실전용으로 완성되기는 왜침 전전날인 4월 12일 이었다 한다.

    그리하여 실전에는 5월29일 사천 양해전이 처음이었다.

    구조는 이분의 충무공행록에 선상을 대판으로 덮고 판상에 좁은 십자로를 만들어 사람이 다닐수 있도록 하고는 모두 송곳으로써 이를 덮어 4방에 발을 붙일수 없게하고 용두와 귀미에는 총혈을 만들어 대적 공격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적을 만났을 때에는 곧 지불을 덮고 송곳으로 에워싸서 섬봉을 설 수 있게 하였다. 또 적선에 오르고자 할 때에는 송곳을 떼게 되었으며 적선에게 포위 당하면 일시에 발사하여 향하는 곳마다 이에 휩쓸리지 않음이 없어 대소전에 왜군을 크게 전율시켰다고 하였다.

    [충무공전서] 귀선도안설에 의하면 저판(底板)은 널판 10장을 이은 것으로 길이가 64자 8치, 뱃머리의 너비 12자, 배 허리의 너비 14자 5치, 배 꼬리의 너비 12자 6치이고 좌우 현판(舷板)은 각각 널판 7장을 이은 것으로 높이 7자 5치, 맨 밑 널의 길이는 68자로 그 위의 널은 길이를 차례로 더하여 맨 윗널은 길이가 113자에 두께가 4치었다고 하였다. 또 노판(艪板)은 널 4장을 연이어 높이가 4자 이고 유판은 널 7장을 붙여 7자5치, 윗너비 14자 5치, 밑너비 10자 6치였다고 한다.

    선체의 좌우에는 각각 22개의 포혈과 12개씩의 출입문이 있었다. 선내의 왼편 포판위에는 함장실이 있고 오른쪽 포판 위에는 장교실이 있었고 좌우 포판 아래에는 24개의 방을 두어 철물고 무기고 사병 휴게실 등으로 썼다. 배의 좌우에는 10개씩의 노가 있어 이것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그 속력이 매우 빨랐다 한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뒤에도 군제상 중요시 되었다.

    거북선은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하여 용두는 귀두로 되고 척도도 일반적으로 장대 해졌으며 총안이나 노의 수를 늘이고 그 복판도 귀갑의 무늬를 그리게 되었다.


    전라좌수영 주축 연합 함대 해전일람표

    충돌별

    해전명

    현행정구역

    해전일자

    전   과

    (격파척수)

    비   고

    제1차

    1592.5.4

    ~5.9

    옥포해전

    함포해전

    적진포해전

    장승포시

    창원시

    통영군

    5.7

    5.7

    5.8

    26

    5

    11

     

    제2차

    5.29

    ~6.10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사천군

    통영군

    고성군

    거제군

    5.29

    6.2

    6.5

    6.7

    13

    21

    26

    7

    거북선첫출동

    제3차

    7.5

    ~7.13

    한산도해전

    안골포해전

    통영군

    진해시

    7.8

    7.10

    59

    30

     

    제4차

    8.24

    ~9.2

    장림포해전

    다대포해전

    부산포해전

    부산

    부산

    부산

    8.29

    9.1

    9.1

    6

    24

    약100

    녹도만호

    정운장군전사(부산포해전)


    *기타 주요승첩해전

    해 전 명

    위       치

    해  전  일 자

    내         용

    명랑해전

    노량해전

    진도울둘목

    남해앞바다

    1597.9.16

    1598.11.19

    임난3대대첩중의 하나

    ․조․명연합함대 구성

    ․이순신장군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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