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기원은 부처님 열반후 500년경 간다라와 마투라 지방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시대적으로는 비슷한 시기이지만 양식의 차이는 현저히 구분된다.
간다라불상의 특징은 그리스헬레니즘양식의 특징을 이어받아 콘트라포스토의 자세를 취하고 인체비례에 충실하며 유려한 복식의 주름을 선보인다. 반면 미투라불상은 과도한 특징의 묘사까지도 허용하며 매우 토속적이고 관능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이는 인도 고유의 신앙이 그대로 불상에 반영된 경우라 하겠다. 복식의 표현또한 주름과 끝단을 제외하면 거의 나신의 모습에 가깝다 하겠다.
간다라 마투라
이러한 양식의 양분화는 굽타왕조를 거치면서 서서히 통일되기 시작하고 양식적 토대를 마련한다. 부파불교의 출현과 함께 불교미술도 대승과 소승의 현격한 차이와 전래 지역의 구분을 가져오고 중국에서는 대승사상과 함께 불상의 양식도 다시한번 재정립되어 진다. 운강, 용문, 돈황석굴에서는 불상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러한 경로를 거쳐 한국에도 불상이 전래되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중국불상의 시대적 양식변화
불상의 출현과 양식의 변화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관가해 왔던 무불상시대에 대해서 좀더 귀기울여 보아야한다.
무불상시대라 함은 부처님 열반후 500년 동안 부처님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지 않고 탑, 보리수나무, 법륜, 사자상등으로 대신하여 나타내던 시기를 일컫는다. 불상의 출현과 변천을 이야기하는 자료에서는 무불상시대를 신성(神性)에 대한 모독이라는 차원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그러할 지 의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성시 되어 질지 모르는 미래를 우려하여 자신의 모습을 어떠한 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을 거라는 추측이다. 조각들이 보여주는 내용에서도 그러한 내용의 근거를 충분히 들 수 있다. 무불상시대의 미술품들이 보여주는 내용들은 지금처럼 귀복적인 성향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처님의 전생의 이야기를 담은 자타카(전생담)나 현생의 이야기를 담은 팔상록등을 주제로 매우 현실적이고 교육적이다. 게다가 부처님의 모습대신에 나타나는 보리수나 법륜등은 해탈과 설법의 은유적 표현으로 보는 이에 대한 자비심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비유적 표현은 불자들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부처님의 모습은 족적이나 보리수 법륜의 상징적 의미에서, 붉은 사암으로 조각되어지기 시작 하면서, 육계가 출현하고 모리모양도 나발의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32길상 80종호라는 형식적 규약이 법화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나타났으며, 사라라는 화려한 의복을 입기 시작하더니 몸이나 머리에서는 수미산의 청정한 황금빛이 100리 밖까지 비추게 되었다.
무불상시대와 불상시대
어느 시대가 불성을 신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황금빛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원류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화려한 가사 대신에 분소의를 입으시고 ,
나발도,
육계도,
32길상 80종호도,
불족도, 법륜도, 보리수도....
새로운 무불상 시대의 도래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