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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여수 거문도 ‘봄 마중’… 첫 봄꽃 ‘수선화 해후’
    ☞2012엑스포 도시 여수 2012. 2. 16. 07:11

     

    거문도 보로봉의 ‘기와집 몰랑’이라 이름 붙은 암봉의 능선에서 굽어본 바다 풍경. 발아래로 쪽빛

    남해바다가 출렁이고, 멀리 수월봉이 흘러내린 자락 끝에 거문도등대가 서있다. 여기가 거문도의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자리다.


    거기서 올해 첫 봄꽃을 만났습니다. 점남 여수에서 남쪽 바다를 가로질러 당도한 멀고 먼 섬 거문도. 봄기운이 실린 아침 볕을 등에 지고 동백터널을 지나 푸른 등대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뭐 벌써 봄꽃이 피었을 리 있겠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도 연방 발 아래를 살피며 걷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등대 아래 벼랑에서 무리지어 환하게 피어있는 수선화를 만났습니다. 올해의 첫 봄꽃. 한겨울 모진 해풍을 이긴 개화(開花)가 어찌나 눈물나게 장하던지요.

    금잔옥대(金盞玉臺). 여수 거문도의 수선화를 일러 부르는 이름이랍니다. 꽃술 자리의 노란 꽃은 금잔과도 같고, 금잔을 받치고 있는 흰 꽃잎은 옥으로 만든 잔받침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아직 꽃대를 채 올리지 않은 것도 있고, 다 피었다가 늦추위에 그만 목이 꺾여 버린 것들도 있었지만, 봄볕이 따스한 양지쪽에는 누구에게 바치는 금잔인지, 수선화들이 수런거리며 피어나 주위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전남 여수항에서 뱃길로 두시간 반 남짓. 푸른 바다를 굽어보는 거문도의 등대 아래 핀 수선화 앞에서 시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 눈물을 흘리신다/…’(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중에서)

    수선화에서 제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고만 나르시스를 떠올린 시인은 그 꽃에서 ‘숙명 같은 외로움’을 보았나 봅니다. 그러나 모진 겨울의 끝에서 만난 수선화에게서는 정작 외로움보다는 따스함 혹은 위안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지금이야 외롭게 군데군데 피어났지만, 이제 몇 날만 더 따스한 봄볕이 섬의 양지쪽을 어루만지고 나면 등대 아래쪽 벼랑에는 수선화들이 마치 아우성처럼 피어나 비로소 봄이 당도했음을 알려주겠지요.

    수선화가 전해준 봄의 훈기를 품고 거문도의 야트막한 산자락을 타고 넘었습니다, 등대가 서있는 수월봉에도 올라보고, 목넘어를 지나 보로봉에서 ‘기와집몰랑’을 거쳐 불탄봉에도 올라봤습니다. 동백이 터널을 이룬 숲길을 따라 거문도 등대에 들렀다가 섬 반대 쪽의 녹산 무인등대의 넓은 초지를 홀로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봄이 가까운 탓일까요. 어쩐지 까마득한 직벽 아래 바다가 더 투명해진 것 같았고, 동백 숲의 터널 속에서 들리는 직박구리 새소리도 청아해진 것 같았습니다.

    수선화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봄꽃을 만나 남쪽 섬의 봄소식을 전하겠다는 조바심으로 뛰듯이 바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다 수선화를 만나고 나자 한껏 걸음이 늦춰졌습니다. 그랬더니 마치 마술처럼 바쁜 걸음으로는 안 보였던 봄의 기운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껏 딛고 온 발밑에는 광대나물과 냉이꽃, 쇠별꽃, 봄까치꽃 같은 새끼손톱의 반의 반이나 될까 싶은 작은 꽃들이 지천이었습니다. 무심코 딛는 발길에 혹 한 송이라도 밟을세라 마치 징검다리를 딛듯 조심조심 걸어야 했습니다.

    여수의 외딴섬, 거문도. 이제 막 봄의 기운이 당도한 그곳을 지금 찾는다면 누구나 다 걸음걸이가 그렇게 되지 싶었습니다.


    거문도 등대 아래서 환하게 피어난 수선화와 마주치다

    ‘거문도등대길’의 울울창창한 동백 숲 터널을 지나는 길에서 발 앞으로 모가지째 툭 떨어진 동백꽃. 늦추위 탓에 꽃잎이 검게 멍들었지만, 숲을 뚫고 들어온 겨울볕에 제법 환하게 빛났다.
    거문도 등대로 향하는 동백터널 숲길. ‘툭’. 자결하듯 목을 떨군 동백꽃 한 송이가 발 앞에 떨어졌다. 늦은 추위에 꽃잎 이곳저곳 멍들긴 했어도 동백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따스한 볕을 받자 제법 발갛게 달궈졌다.

    거문도에는 동백이 지천이다. 섬 안에 자라는 나무의 열 중 일곱이 동백나무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거문도에서 동백은 겨우내 피고 지는 꽃이다. 거문도 동백의 절정은 2월 중순이니 딱 지금이다. 하지만 늦은 추위 탓인지 이즈음 동백들이 아예 꽃눈을 닫고 개화를 멈췄다. 간혹 피어난 것도 검은 멍 투성이다.

    밤새 차로 여수까지 내려가 여수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를 거쳐 뱃길로 꼬박 두 시간여를 달려온 길이었다. 그 먼 행로를 작정한 것은 봄의 기운과 화사한 봄꽃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봄기운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지만, 여수에서도 봄의 기운은 희미했다. 그 길에 내처 바다를 딛고 더 남쪽의 섬 거문도까지 내려간 걸음이었다.

    거문도의 고도 선착장에 내려 삼호교를 건너 유림해수욕장으로 접어들 때만 해도 기대는 부풀었다. 바람 끝은 유순했고, 볕은 따스했다. 해안가에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린 유채꽃의 노란빛이 선명했다. 이곳의 유채는 가지런히 심어진 제주의 유채와는 다르다. 심어 기르지도, 돌보지도 않았지만, 저 스스로 해안가에 뿌리를 내리고 언 땅에 꽃대를 올려 힘겹게 꽃을 피워냈다.

    거문도 등대로 향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쯤 거문도 등대 아래 수선화가 피었을까.’ 하지만 동백터널로 들어서 꽃눈을 닫거나 온통 멍든 동백꽃을 보곤 기대는 곧 체념으로 바뀌었다. 동백이 꽃눈을 닫았는데 수선화가 먼저 피었을 리 있을까. 봄을 만나기에는 너무 이른 길이었을까. 그렇게 길 끝에서 거문도 등대와 마주섰다. 발아래 바다는 투명하게 빛났고, 볕은 따스했다. 꽃이 없더라도 등대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며 따스한 봄볕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싶었다.

    그러다 문득 등대 아래서 바다를 굽어보다 벼랑에서 고개를 내민 수선화와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등대 담에서 고개를 빼고 벼랑을 살피니 이곳저곳에서 수선화가 하나둘 꽃을 틔우고 있는 중이다. 흰 꽃잎의 잔받침에 노란 꽃잔이 올려진 이른바 ‘금잔옥대(金盞玉臺)’의 모습 그대로다. 긴 겨울을 이기고 가녀린 꽃대 끝에 환한 꽃을 매단 수선화가 어찌나 장하던지. 아, 이제 바야흐로 봄이다. 남쪽의 섬에서 환하게 핀 수선화와 함께 봄이 시작됐다. 아직 꽃을 틔우지 않은 연두색 잎들이 지천이니 따스한 날들이 며칠만 더 계속된다면 등대 아래에는 앞다퉈 피어난 수선화들로 물결치리라. 멀고 먼 남쪽 섬마을에 당도한 꽃소식은 봄을 알리는 축포와도 같다. 이제 거문도에서 출발한 봄꽃 소식은 시속 1㎞의 속도로 하루에 25㎞씩 북상해 올라갈 터이다.

    봄의 기운으로 가득한 거문도를 걷는 법

    거문도에서 일찍 당도한 봄을 만끽하려면 ‘걷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섬 안에 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길이 외길인데다 대중교통이라고는 택시 2대밖에 없다. 거의가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택시는 요금도 호되게 비싸다. 아마도 거문도의 택시요금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지 싶을 정도다. 이를테면 여객선터미널에서 서도선착장까지 대략 5㎞쯤을 왕복하면 3만원의 요금을 부른다. 그러니 그저 걷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짧은 길을 택시로 이동하는 것보다 제 발로 걷는 편이 훨씬 더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으니 아쉬울 건 하나 없다.

    거문도를 걷는 코스는 3가지가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사무소가 내건 현판은 다른 등산로처럼 ‘탐방로’라 이름 붙여 놓았지만 사실 높아봤자 고작 200m 남짓을 오르내리니 ‘탐방’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능선을 타고 가는 길에서는 줄곧 풍경이 발길을 붙드니 숨 한번 찰 일도 없다.

    그중 가장 알려진 코스가 거문도 등대 가는 길이다. 여객선 터미널 선착장에서 삼호교를 건너 서도쪽으로 넘어와 ‘목넘어’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가 동백 숲 터널로 이어진 해안길을 따라 등대를 향하는 길이다. 목넘어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1.5㎞ 남짓의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 숲길로 꼽히는 곳이다. 어둑한 동백 숲에서 해조음과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울음을 따라 가면 어느새 등대에 당도한다. 등대는 1905년 남해안 최초로 세워졌으니 올해로 106년째를 맞는다. 지금은 높이 솟은 새 등대가 불을 밝힌다.

    거문도의 불탄봉 쪽 능선에서 굽어본 고도의 모습, 동도와 서도 사이에 자리 잡고 서도와 삼호교

    로 연결돼 있는 작은 섬인 고도는 섬의 중심이다.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영국 해군도, 뒤이어 거

    도를 드나든 러시아와 미국의 함대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도 이곳에 정착했다.


    거문도의 수선화는 이곳 등대 아래쪽 벼랑에서 화사하게 피어난다. 뭍에서는 수선화가 4월이나 돼야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거문도등대 아래 수선화는 벌써부터 꽃을 틔웠다. 선착장에서 거문도등대까지는 두 시간여 남짓. 시간의 절반쯤이 포장도로를 걷는 시간이니 숲길은 1시간이면 충분히 왕복할 수 있다.

    두번째 코스는 목넘어에서 ‘365계단’이란 판석으로 만든 계단길을 타고 올라 ‘기와집 몰랑’의 능선을 넘어 신선바위와 개빠진통을 지나 유림해수욕장으로 내려서는 코스. 아예 불탄봉을 지나서 덕촌마을 쪽으로 내려서기도 한다. 이 길이 거문도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코스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 기와집 몰랑이다. ‘몰랑’이란 전라도 사투리로 산마루라는 뜻. 바다에서 보면 이 능선 부분이 기와집 영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바다 쪽이 직벽에 가까운 기와집 몰랑에 서면 아찔한 기암 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바다 쪽으로 밀고 나온 섬 끝에 거문도등대가 서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히 ‘거문도 최고의 경치’라 해도 손색이 없다. 거문도등대는 가까이 다가가서 봐도 좋지만, 이렇듯 멀리 물러서서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광이 훨씬 더 낫다. 불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면 오른쪽도 왼쪽도 쪽빛 바다가 펼쳐지니 이런 호사가 없다. 유림해수욕장 쪽으로 짧게 끊는다면 2시간 안쪽이고, 불탄봉을 지나서 덕촌으로 내려선다 해도 3시간이면 시간이 남아돈다.

    너른 초지 사이로 난 바닷가 오솔길을 걷는 맛

    그닥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문도에는 독특한 풍광을 가진 또 다른 걷기 코스도 있다.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 쪽에서 거문도의 북쪽 끝의 녹산등대를 다녀오는 코스다.

    거문도등대가 섬의 남쪽 끝에 있는 등대라면, 녹산등대는 거문도 북쪽을 밝힌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녹산등대를 따라가는 길의 풍광이 섬의 다른 곳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초지로 이뤄진 부드러운 능선이 바다와 함께 펼쳐지고 초지 사이로 유연하게 흐르는 길이 등대까지 이어진다. 섬의 다른 곳들은 죄다 동백 숲인데 어찌 이곳만 나무 한 그루 없이 초지가 펼쳐져 있을까.

    이유인즉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쯤 녹산등대 쪽의 숲에 큰불이 났단다. 초등학교 3학년생 세 명이 등대 쪽에서 나뭇가지를 지펴 고구마를 구워 먹다가 그만 불을 낸 것이었다. 장난처럼 지른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더럭 겁이 난 아이들은 무작정 여객선을 타고 여수로 나갔다. 아마도 겁에 질려 가출을 결심했던 것이었겠다. 불이 나자 섬 주민들이 다 몰려나와 불을 껐다. 천신만고 끝에 주민들이 불을 끄고 보니 아이들 셋이 없어졌고, 그 아이들이 여객선을 타고 여수로 나갔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라면 들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불이 나자 그 길로 아이들 셋이 사라졌으니 그게 누구 소행인지는 명명백백한 일이었다. 섬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얼마나 혼쭐이 났을지는 듣지 않아도 알 일이다.

    불이 나는 바람에 만들어진 풍경이지만,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운치가 넘친다. 지금은 초지에 지난가을의 억새들이 줄기만 남아서 바람에 출렁거린다. 바람의 행로에 따라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처럼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모습이 더없이 낭만적이다.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싶었더니, 제주의 섭지코지 풍경을 빼닮았다. 바다를 끼고 걷는 길섶에는 아직 꽃대를 채 밀어올리지 못한 수선화들이 이따끔 생각난 듯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딴섬에서 벌어진 서구 열강의 각축의 흔적들

    수도권에서 가자면 여수까지도 네댓 시간쯤은 족히 걸리는데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나로도, 손죽도, 초도를 거쳐 115㎞를 더 가야 거문도에 당도한다. 쾌속선이 뜨고 교통사정이 나아진 지금도 이렇듯 멀고 먼 외딴섬이다. 그럼에도 거문도는 100여년 전에는 서구 열강의 야욕이 부딪히던 각축장이었다.

    거문도는 3개의 섬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동도와 서도, 두 개의 섬이 손등을 봉긋 올리고 두 손을 마주해 기도하는 듯하다. 그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 고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양 손등이 사방을 요새처럼 막아서고 그 가운데에 아늑한 바다를 품고 있으니 가히 천혜의 항구라 할 만하다. 일찍이 150여년 전부터 영국과 러시아, 미국의 해군함정이 드나들었던 것도, 급기야 1885년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2년 동안 거문도를 무단 점거한 ‘거문도 사건’이 발생했던 것도, 다 이런 입지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거문도를 해군성 차관의 이름을 따서 ‘포트 해밀턴’이라고 불렀다.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거할 당시 거문도, 아니 포트 해밀턴에는 2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지금 거문도 인구가 1500명 남짓이라니 지금보다 오히려 인구가 더 많았다. 섬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거대한 군함을 타고 당도한 벽안의 이방인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당시 섬 주민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구 열강의 각축과 세계 정세의 흐름을 짐작이나 했을까.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어느 곳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영국 해군은 물러갔지만, 그 흔적은 섬에 있는 두 기의 영국 수병의 묘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 후에도 제국주의의 침략은 그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섬 곳곳에는 일본식 여관의 흔적과 신사 터 등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도 주한 영국대사관 영사가 주기적으로 거문도를 방문해 수병의 묘를 찾아 꽃을 바치고 있고, 거문도에 정착했다는 일본 야마구치현의 기무라 추다로(木村忠太郞)의 후손들도 일본에서 ‘거문도회’를 조직해 이따금 거문도를 찾아오고 있다. 이런 흔적들을 짚다 보면 수선화는 화사하게 꽃을 틔웠지만 어쩐지 그 섬에서 봄맞이를 하기에는 다소 심경이 복잡할지도 모르겠다.

     

    거문도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에서 완주~순천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가다 순천나들목으로 나와 17번 국도로 갈아타고 들어가면 여수다.

     

    거문도 가는 쾌속선은 여수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오후 2시에 출항한다. 성수기에는 청해진해운과 오션호프 등 두 곳의 해운회사가 각각 오전과 오후에 여객선을 띄우지만, 이즈음에는 하루 한 편으로 줄어들었다.

     

    오는 18일까지는 오션호프해운의 줄리아아쿠아호가 운항하고, 19일부터는 청해진해운의 오가고호가 운항된다. 오가고호가 배의 규모도 크고 선실도 쾌적하다. 뱃삯은 편도 3만6600원.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거문도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고도는 여관과 모텔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시설이 낡은 편이다. 여관 말고도 고도에는 한 집 걸러 민박집들이다. 웬만한 식당들은 대부분 민박을 겸한다고 봐도 좋다. 숙박요금은 3만원 선. 민박을 들이는 방은 대부분 여름철 손님을 위해 지은 것이라 그런지 단열이나 난방이 좀 부실한 편이다. 게다가 관광객이 많지 않은 때라 손님을 받은 뒤 난방을 들이는 탓에 외풍은 각오해야 한다.

     

    이즈음 거문도에서 맛볼 음식이라면 단연 삼치회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가 삼치철인데 최근 어획량이 줄긴 했지만, 이즈음에 거문도에 갔다가 삼치회를 먹지 않고 돌아온다면 아니될 말이다. 횟집에서는 삼치 말고도 광어나 우럭 등의 생선도 내는데 섬 안의 양식장에서 막 건져 올린 것들이라 같은 양식이라 해도 훨씬 선도가 좋다.

    거문도(여수)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출처 : 청명사랑방
    글쓴이 : 于天(우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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