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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빛[一色]
마른 나무 바위 앞에서 길 잃는 일 많으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이르면 모두 잘못 가도다.
해오라기가 눈에 서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요
밝은 달과 갈대꽃도 서로 같지 않다네.
분명히 알았을 때 안 것이 아니요
지극히 현묘한 곳에서도 꾸짖어야 하리라.
그대 위해 그윽한 곡조를 은근히 부르나니
허공 중의 달빛을 움켜잡을 수 있겠는가.
枯木巖前差路多 行人倒磋盡蹉跎
고목암전차로다 행인도차진차타
鷺鷥立雪非同色 明月蘆花不似也
로사입설비동색 명월로화불사야
了了了時無所了 玄玄玄處亦須呵
요료료시무소료 현현현처역수가
慇懃爲唱玄中曲 空裏蟾光撮得麽
은근위창현중곡 공리섬광촬득마
일색이란 모든 존재를 한 빛으로 보는 견해이다. 부처와 중생이 일색이며, 번뇌와 보리가 일색이라는 등의 견해를 말한다. 그러나 유와 무가 하나며 모든 만물이 하나라고 보는 데에도 착각과 착오가 있을 수 있으니 면밀히 살펴서 조심하라는 가르침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이르러 거의 다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해오라기와 눈은 같은 색이 아니다. 명월과 갈대꽃도 같은 색이 아니다. 그것들을 혼동해서 같다고 본다면 착각이다.
삼라만상의 천차만별을 일색으로 보면서도 각각의 천차만별을 철저히 구분해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체 차별법이 모두 다 한 마음이지만 일체의 차별을 또한 차별로 보아야 하고, 차별을 차별로 보면서 또한 한 마음으로 보아야 바른 견해가 된다. 그것을 중도정견(中道正見)이라 한다. 깨달음의 안목이란 일체를 한마음으로 보면서도 그 모든 것들을 혼동하지 않고 각각의 특성을 갖는 개체로 구분해서 볼 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대로 차별만을 쫓아 간다면 그것은 다만 속제(俗諦)의 안목 밖에 안 된다. 그래서 고인이 이르기를 “일색은 일색 밖에 있음을 알겠다.”라고 하였다.
일색은 다른 말로 하면 평등이며 공(空)이다. 공이 아닌 평등이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의 일색이 평등의 일색이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평등을 보되 차별을 보아야하고, 공을 보되 유(有)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보되 승려로 보며, 승려로 보되 또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의 문제나 고금의 문제나 부처와 중생의 문제나 모두 같은 것이다. 즉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르다는 이치이다. 편중되면 병이요, 치우치면 고통이다. 이렇게 치우치지 않고 원융무애하며 막힘없이 통류(通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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