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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뒤바뀌랴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라, 어찌 일찍이 뒤바뀌리오.
물과 물, 산과 산이 각각 완연함이로다.
백억의 살아있는 석가가
봄바람 끝에 취하여 춤을 추도다.
天天地地何曾轉 水水山山各宛然
천천지지하증전 수수산산각완연
百億活釋迦 醉舞春風端
백억활석가 취무춘풍단
불교공부에는 팔만사천 방편문을 돌고 돌아서 여래의 경지에 올라가는 길도 있고, 곧바로 질러서 가는 ‘일초직입 여래지(一超直入 如來地)’의 경절문(徑截門)도 있다. 한 걸음에 중생의 자리에서 곧바로 궁극의 지위인 여래의 경지에 오른다는 뜻이다. 그와 같은 지름길이란 다름 아닌 모든 존재의 본연의 모습을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본연의 모습을 아는 방법도 경절문의 격식에 맞게 간단명료해야 한다. 간단명료해야 옆길로 새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조사스님들이 오랜 세월 동안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창안해 낸 것이 있다. 사람과 아울러 모든 존재들의 본연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는 일이다. 즉 ‘할’을 한다든지, 몽둥이로 한 대 후려친다든지, 아니면 손가락을 세워 보인다든지, 꽃을 들어 보인다든지, 옆자리를 나누어 앉는다든지 하는 일이다. 그도 아니면 유마 거사처럼 묵묵히 가만히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땅과 하늘이 뒤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뒤바뀔 필요도 없다. 각각 본연의 모습 그대로 완전무결하다. 다듬거나 색칠을 할 필요가 없다. 불교 궁극의 경지를 여래라고 한다. 그 여래란 모든 존재의 변함없는 여여한 모습이라 했다. 그러므로 불교공부란 모든 존재들을 다듬고 꾸미고 바꾸고 색칠하여 달리 보이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본연의 모습으로 사는 일이다.
그러한 삶은 곧 성인의 삶이다. 부처님의 삶이다. 백억의 살아있는 석가모니가 태평가를 부르며 봄바람 끝에서 취하여 춤을 추는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팔만사천 수행방편이 결국은 이 사실을 아는 데 있다.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스님은 조선 초기의 스님으로서 여러 사찰을 편력하며 수행하다가, 나중에는 희양산 봉암사에서 사찰을 크게 중수하고 그 곳에서 열반하였다. 저서로는 원각경을 해설한 것이 지금도 강원에서 교과서로 읽히고 있으며, 특히 금강경오가해 설의는 너무나 유명하다. 여기에 소개한 글도 오가해의 글이다. 뛰어난 안목으로 불법의 종지를 드러내고 능숙한 그 솜씨로 명문을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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