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범부중생에게는 진리가 자유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포기가 자유롭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포기하면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남과 나 모두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포기는 자신은 자유로울지 모르나 주위에 민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한 것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석가세존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가 찾아낸 가장 소중한 진리이기도 하다.
차를 타고 다니는 시간이 많은 나는 경전구절을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가운데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 하나인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5장)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있는 바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이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아주 문제가 심각해진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하신 원뜻이야 내가 알지 못하지만
범부중생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유상(所有相)이란 구절을 많은 이들이 ‘있는 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석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모습에 대한 생각’이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금강경은 처음부터 철저히 심법(心法)이기 때문에 물질적
현상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있는 바의 모습들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에 대한 생각’이 허망한 것이다.
범부중생은 허망한 생각만 가지고 산다.
허망하다는 것은 무슨 소린가?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생각보다는 소극적인 생각
능동적인 생각보다는 피동적인 생각
기쁘고 즐거운 생각보다는 괴롭고 슬픈 생각
이런 생각들이 허망한 것이다. 그 생각에 묶인 범부중생은 더욱 괴롭기 때문이다.
지그지글러는 그의 저서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재능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부정]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망설임]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두려움]입니다.
네 번째 이유는 [무책임감]입니다.
이렇게 열거하고 있다.
금강경의 위 사구게는 이런 범부중생의 생각의 속성이 허망한 것이고
그 허망한 것에 묶이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석하면 자연히 제상(諸相)과 비상(非相)이 해석이 쉬워진다.
두 가지는 상대적 개념으로 쓰였다.
하나가 긍정적 사고라면 다른 하나는 부정적 사고이고
하나가 적극적 사고라면 다른 하나는 소극적 사고이며
하나가 능동적 사고라면 다른 하나는 피동적 사고이고
하나가 기쁘고 즐거운 사고라면 다른 하나는 괴롭고 슬픈 사고이다.
그 이치를 자세히 알면
부처님이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신 것인가를 자세히 알게 된다.
허망을 강조하신 것은 허망한 생각에 초점이 있는 것이지
우리 인생이 허망함을 좇으라는 말씀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늘 생각해보자.
그리고 허망하지 않은 생각을 찾아보자.
그것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의 실천이다.
정토사상에서는 선오후수(善悟後修)를 말씀하신다. 먼저 깨닫고 수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행(修行)이란 말씀은 보살도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씀이신가?
나무 만덕장엄(萬德莊嚴)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