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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괘불탱화
    #佛敎 2007. 9. 23. 14:14
    『괘 불 탱 화』



    괘불은 영산재나 예수재, 수륙재 등 야외에서 행해지는 큰 법회나 의식을 할 때 법을 설할 단 뒤에 거는 불화를 특별히 일러 부르는 것인데, 이것 역시 탱화이기에 부처님을 비롯하여 불보살의 모습을 그린다.
     
    괘불은 야외에 걸리기 때문에 크기가 상당히 큰 데, 높이가 15미터에 폭이 10미터인 것도 있다. 화면의 크기나 화필의 우수성으로 보아 불교회화의 대표격으로 한국 회화사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자랑거리이다.
    괘불의 종류에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지장회상도(地藏會上圖), 관음보살도, 용왕대신도, 신왕대신도 등이 있는데, 원래 행하고자 하는 법회나 재의 성격과 의식의 종류에 따라 알맞은 내용을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영산재에는 장수와 극락 정토를 기원하며, 영축산에서 진리를 설법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려진 영산회상도를 모시고, 죽은 뒤에 행할 불사(佛事)를 살아 생전에 미리 모시는 예수재나, 물 속과 땅 위에 널려 있는 외로운 원혼을 달래고 천도하는 수륙재에는 지장회상도(地藏會上圖)나 미륵불(彌勒佛)을 모시고, 관음재일에는 관음보살도를, 용왕재는 용왕대신도를, 산신재에는 산왕대신도를 괘불로 모셔야 하나 현재로는 각 사찰마다 보존하고 있는 괘불의 숫자가 매우 적고 야단에 설치하기 어렵고 큰 법회를 대웅전이나 회관에서 보는 관계로 괘불을 걸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 백여 점 이상의 괘불이 비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행사 때 사용되거나 조사가 가능한 괘불은 몇 십 점에 불과하다. 현재 조사된 37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나주 죽림사 괘불로 1623년에 제작된 것이다. 괘불이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17,8세기에 괘불의 제작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괘불의 제작 시기별로 특징을 살펴보면, 1623년부터 1745년까지는 대부분이 영산회상도이며, 1759년부터 1800년까지는 보살상이 유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830년경부터는 영산회상도가 다시 유행하게 되는데, 1684년경까지는 주존이 결가부좌한 형태였으나 그 이후는 대부분 입불이다.
     
    영산회상도는 초기에는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 보살이나 사천왕, 10대제자, 분신불 등이 철저한 좌우대칭으로 복잡하게 화면을 가득 메워 보는 사람을 압도했으나, 점점 주존불이 과장되면서 좌우 인물들이 축소되고 화면 구성이 간략해진다. 이는 조선 불화의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느낌과 일치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화의 차이는 구도나 색상, 그리고 옷이나 바탕에 나타나는 문양에 의해 드러나는데, 조선시대의 괘불은 밝고 화사한 홍색과 녹색을 기본 바탕으로 사용하며, 금색도 제한하여 호화스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한 문양은 특히 대형화된 화면에 걸맞게 장엄하고 위엄을 나타내는 갖가지의 문양들이 발달하게 되어 고려불화에서 주종을 이루던 보상당초문을 비롯하여 연화문, 국화문, 모란문, 초화문, 봉황문, 칠보문, 귀갑문 등을 단순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수법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광배나 사각대좌, 바탕, 공간 화면 등이 기하학적으로 도식화된 특색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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