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라는 말 한마디
‘그냥’ 이라는 말 한마디
어린
부엌에서나 2 층에서 일을 하던 엄마가 “왜? 나 여기 있다.”고 대답하면 “그냥..”이라는 말 한마디로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놉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하고 불렀을 때 텅 빈 집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아이의 가슴에는 텅 빈 느낌이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재미동포 한 분은 어려서 어머님을 잃었답니다.
“엄마!’, (Mom!)
“왜 그래, 나 여기 있다.”(I am here.),
“그냥” (O, Nothing.)
이런 식의 대화를 해보지 못하고 성장을 했기 때문에 “그냥”으로 통하는 따뜻한 사랑의 소통이 그리웠다고 술회합니다.
대개의 아이는 엄마가 있는 곳이 집(House)이 아니고 가정(Home)이라는 정서적 안정을 확인하는 것이겠지요.
“그냥” 이라는 자녀의 말 한 마디에 근심 걱정이 날아가는 포근함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그냥 전화했어.”라는 간단한 메시지는 따듯하고 끈끈한 부부애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부부 사이나 부모 자녀 사이에 서로를 부른 후에 “그냥”이라는 한 마디는 감격스러운 사랑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반드시 할말이 있어서만 전화를 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일생 생활에서 친지, 친구 사이에 “그냥”의 전화를 자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냥”이라는 말과 마음을 좋아합니다.
노래 가사나 시에도 “그냥”이라는 말이 포함되면 제 눈길을 끕니다.
'신기선' 님의 “역설의 꽃”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낙엽은 그냥 이 아니다.
또 그냥 웃고 보는 것이 아니다.
가을에 찾아 오는 영원한 꽃이다.
역설의 꽃이다.
공간을 은밀히 울음으로 뛰어다니는 움직이는 꽃이다.
우리의 죽음도 그냥 이 아니다.
인간이 뒤 안에 남기는 현재는 찾아오는 꽃이다.
잔인한 역설의 꽃이다.
우수(優愁)의 다래기에 독하고 아프게 피고 있는 고통이 알 깐 꽃이다.
시간을 바람에 끓이는 새로운 고전의 꽃들이다.
“그냥” 이라는 말이 좋고 “그냥” 이 내포하는 따뜻함이 좋아서 그냥 올려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