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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업도 결과가 다르다"
    #佛敎 2008. 7. 7. 06:53
    "같은 업도 결과가 다르다"
                                                

    허공 중에서도
    바다 가운데서도
    또는 산 속 동굴에 들어갈지라도
    악업의 갚음에서 벗어날
    그런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법구경에서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지은 악업은
    반드시 그 결과를 받고야 만다.

    악업을 짓고
    선업을 다시 지었다고
    악업이 상쇄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지은 악업은
    반드시 그 결과를 받고 나서야 사라진다.
    악업의 결과에서 벗어날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왜 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한 업장소멸을 설파하는 것일까.
    언뜻 보기에 이 게송과
    업장소멸은 어긋나는 것 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소금물의 비유를 설하고 계신다.
    한 움큼의 소금을 한 잔의 물 속에 넣으면
    그 물은 짜서 마실 수 없게 되지만
    그것을 큰 그릇에 넣으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잔 속에 넣은 소금의 양과
    큰 그릇 속에 넣은 소금의 양은 동일하지만
    물의 양에 따라 마실 수 있는 물이 되기도 하고
    마시기 힘들만큼 짠 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 악업을 지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업을 기계론적이나 결정론적으로
    반드시 나쁘게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즉, 악업을 지었더라도
    그 뒤에 선업을 많이 짓거나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아
    죄가 본래 공함을 깨닫게 되면
    악업에 대한 과보를 나쁘지 않게 받을 수도 있다.

    즉, 과거에 어떤 업을 지었느냐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과 운명을
    자신 스스로 변화시키고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보(業報)의 ‘보’는 ‘다르게 익는다’는 의미다.
    업에 따라 결정론적으로 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과거에 지은 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내 삶의 모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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