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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원사
    ♠寺刹巡禮 2008. 4. 16. 10:11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198-5번지에 위치한 개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다. 장경사, 망월사와 더불어 국가문화재 사적 5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남한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인조 때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새롭게 보수는 일이 있었다. 이때 인조는 선종 지도자 벽암 각성을 팔도 도총섭으로 임명하고 승군을 모아 남한산성을 보수하게 했다. 남한산성은 전적으로 승군에 의해 보수되게 되었고, 산성의 보수 및 방어의 역할 역시 승군에게 주어졌다. 이를 계기로 1624년에 개원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후 남한산성 안에는 승군이 주둔할 7개의 사찰을 더 창건하게 되었고, 이 모든 승군의 본영 사찰로 개원사가 활용되었다. 이로 개원사는 한양을 지키는 호국사찰의 중심이 되었고, 폐사되기 이전까지 조선불교의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894년에 들어와 승번제도가 폐지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는 1907년에 들어와 일제가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사찰들이 화약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찰들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장경사 기록에 의하면 개원사는 이때 폐사가 된 듯하며, 1909년에 개원사의 루를 장경사로 이건했다고 한다.

    [청량산 개원사 조계문(淸凉山 開元寺 曹溪門)라 쓰인 현판이 걸린 일주문...]

    [일주문 왼쪽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입상...]

    개원사의 입구 일주문에 다다라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언덕 위에 관세음보살상이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원사사적비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입상'은 사내(寺內) 대중이 예로부터 상용해오던 개원사 동편 기슭 우물위에 모셨던 것을 이안하였다'라고 하고 있는데 이 관세음보살이 이곳으로 이안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공양상이 조성되어 있고, '南無阿彌陀佛'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작은 석주 역시 확인 가능하다.

    [개원사 관세음보살입상...]

    [개원사 천왕문...]

    일주문이 사찰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건립되었기 때문에 실제적인 정문의 역할은 이 천왕문이 담당하고 있다. 천왕문 이라고 현판을 달고 있으나 4대천왕이 모두 봉안되지 않았고, 왼쪽 문짝에는 칼을 들고 있는 동방천왕인 지국천왕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문짝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는 서방천왕인 광목천왕이 그려져 있으나 3량의 구조를 갖고 있고, 초익공, 맞배지붕의 건축이다.

    [개원사 천왕문 왼쪽문에 그려진 지국천왕...]

    [개원사 천왕문 오른쪽에 그려진 광목천왕...]

    [개원사 송덕비 - 조병길송덕비, 이윤심송덕비, 개원사사적비, 이진호송덕비 ...]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개원사 사적비...]

    개원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수선사(修禪寺)로 터를 연후 한적한 수도처였으나 임진왜란때 1596년 9월(선조 29)에 사명대사가 의승군정예를 이끌고 이곳에 진주하여 선무(禪武)교육을 실시하였고 병자호란 등 국난(國難)이 있을 때마다 스님들이 솔선하여 국방의 일익을 담당 개원사가 의승군 본영이 되면서부터『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등에 이 절의 역사와 나라를 지킨 호국 성군(聖軍)으로서의 활약상이 기록되어있다 조선 1624년 (인조 2)에 남한산성 축성의 대임을 맡은 벽암각성(碧巖覺性)선사가 조선팔도 육십종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남한산 개원사에 의승 본영(本營)을 설치하면서 356명의 의승과 138명의 원거의승(原居義僧)의 수용을 위해 수백간의 대사찰로 증축하였고, 아울러 望月寺, 玉井寺, 漢興寺, 長慶寺, 國淸寺, 天柱寺, 東林寺, 南壇寺 등 성내(城內)의 사찰들을 중창 내지 신창하였다 그 후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때 의승 방번(防番)이 폐지될 때까지 370년간 국가보조없이 불교교단 스스로 남북한양산성수호 비용을 자비(自賁) 부담하면서 역대 승장 등 五百餘 스님들이 수도 한양을 지켜온 호국의 얼이 배어있는 성지(聖地)이다... 이하 생략... 제작 연도 - 1988년

    [일주문 옆 관세음 보살과 또 한분의 개원사 관세음 보살상...]

    [개원사 관세음 보살 석상...]

    [개원사 범종각...]

    대각전에서 좀 떨어진 낮은 대지에 범종각이 위치하고 있다. 2층의 누각형식으로 건립되었다. 정면3간 측면 2간의 평면형을 갖고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현판과 주련은 주진입로 쪽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매달지 않고 대각전 쪽을 향해 매달은 것이 특징적이다. 범종각안에 걸려있는 '개원사 호국대범종시주방명'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96년에 조성된 것이다. 범종각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願此鐘聲遍法界(원차종성편법계) 원컨데 이 종소리 모든 법계 퍼지소서, 鐵圍函暗悉皆明(언위함암실개명) 쇠철장속 모든 지옥 어둠 밝아지게 하소서, 三途離苦破刀山(삼도리고파도산) 삼도의 도산지옥 고통을 여의고, 一切衆生成正覺(일체중생성정각) 모든 중생 바른 길로 깨닫게 하소서 라고 쓰여있다.

    [개원사 범종엔 비천상이...]

    초석은 팔각형의 초석을 사용했고, 그 위에 원통형기둥을 얹었다. 공포는 외1출목 내2출목의 다포형식을 사용했다. 공포에 사용된 살미는 끝에 화려한 초각을 사용했고 운공에 봉황의 머리를 꽂아놓았다. 이는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범종각은 계자난간을 이용해 난간을 조성했다. 범종은 1996년에 조성되었다. 전형적인 한국 종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종신에는 비천상을 새겨 놓았고, 곳곳을 보상화문 무늬로 장식했다. 또 종신 상부에는 용뉴를 만들었고, 한국종의 특징인 음통을 갖추고 있다. 종신 상부의 보상화문 띠에 면한 아래에는 네 곳에 보상화문의 띠를 이용한 유곽을 두르고, 그 속에 9개의 연꽃형 유두를 두었다.

    [개원사 연못...]

    [개원사 석가모니불...]

    화현전 오른편에는 작은 불단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불신과 불두가 따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불신은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개원사 근처 산에서 모셔온 것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그 조각 수법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불상에 비해 매우 세밀하다. 특히 두상이 비교적 커다랗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개원사의 창건 연대인 1624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원사 석가모니불...]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거북머리 같은 석조물...]

    [개원사 주불전인 대각전...]

    개원사의 주불전으로 1976년 선효 스님 부임 이후로 새롭게 건립한 법당이다. 마당과 구분되게 높은 축대를 쌓고 이 위에 대각전을 건축했다. 도리통 3간, 양통 3간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팔작지붕으로 마무리 했는데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는 커다란 용머리를 장식했다. 초석은 원형초석인데, 연꽃모양으로 매우 화려하게 조각했다. 초석 상부의 기둥은 배흘림기둥을 사용하고 있고, 공포는 다포형식을 채용했다. 내외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쇠서의 모양은 앙서형을 주로 사용했고, 최상단의 운공은 봉황의 머리를 이용해 구성했다. 또한 기둥상부에는 안초공을 사용했는데, 공포의 구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의 공포구성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개원사 대각전 현판...]

    건물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심우도는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묘사한 그림이다. 많은 사찰에서 법당의 외벽화로 이 심우도를 그려놓고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다.  전면의 창호는 모두 4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창호는 모두 빗살을 사용하고 있다.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광변조시방중(威光遍照十方中)-위광을 온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월인천강일체동(月印千江一切同)-달그림자 천강에 하나로 동일하네, 사지원명제성사(四智圓明諸聖士)-네 가지 지혜 두루 밝은 여러 성사들이, 비림법회이군생(賁臨法會利群生)-법회에 임하시어 군생들을 이롭게 하시네.

    [개원사 대각전 내부 불단...]

    내부에 우물천장을 들였기 때문에 정확한 내부구조를 말할 수 없으나, 후면에 하나의 고주를 사용했다. 대부분 불전의 경우 이 2개의 고주사이에 후불벽을 조성하고 이곳에 부처님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개원사에서는 불단을 고주 뒤에 설치했다. 내부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한 방편이다. 근래에 새롭게 조성하는 불전의 경우는 이런 고주마저 생략하는 경향이다. 넓은 내부공간의 필요성과 더불어 내부를 가로지를 수 있는 대들보를 구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불단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좌측에는 지장보살, 우측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고, 후면에 석가모니후불탱화를 봉안했다.  중단으로 중앙간 왼쪽 간에는 신중탱화를 봉안했고, 오른쪽 간에는 시왕탱화를 봉안했다. 신중탱화의 화기에는 1986년에 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단(영단)은 불전의 오른편에 마련되어 있다. 왼편에는 동종이 배치되어 있다.

    [개원사 신중탱화가 좌측에 모셔져 있고...]

    [개원사 시왕탱화가 우측에 모셔져 있고...]

    [개원사 대각전 내부의  동종...]

    [개원사 대각전 측면...]

    [개원사 삼층석탑이 마당 한가운데 자리하고...]

    삼층석탑 3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석탑이며, 개원사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부 2단의 기단은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 없이 단순하게 구성되었으며, 3단의 기단은 일반적인 가구식 기단의 모습을 새겨 넣었는데, 각 면마다 3개의 기둥(우주 2개, 탱주 1개)을 새겨 넣어 가구식 기단을 표현했다. 각 층의 탑신과 옥개는 각각 한 돌로 만들었다. 각층의 탑신에는 모서리에 우주를 새겨 넣었고, 갑석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완성했다. 각층의 옥개석은 매우 두껍게 처리되어 투박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상륜부의 경우▶▷≫

    [개원사 삼층석탑...]

    탑을 구성하는 다른 석재와는 다른 색깔과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른 부분의 비례가 매우 투박함에 비해 상륜부는 전형적인 신라식의 세련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상륜부는 어느 때인가 사라진 이후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적인 요소로서 탑 주위에 둘러쳐진 난간을 들 수 있다. 많은 부분이 새롭게 복원되었으나, 사방에 세워져 있는 기둥은 창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상부를 연꽃모양으로 조각된 것도 있고, 상서로운 짐승의 모습이 조각된 것도 있다. 아무리 무섭게 인상쓰고 있지만 미소가 나오게 만드는 정겨운 모습이다.

    [탑주위 난간 의 기둥은 창건 당시 의 본래 것이라고...]

    [새로 복원된 것 같은 신라의 탑 형식인 상륜부의 아름다움...]

    [대각전 앞에 자리한 개원사 석등...]

    [개원사 석등...]

    [개원사 석등...]

    [개원사 요사인 심우당...]

    [개원사 심우당 3간의 측면 팔작지붕의 멋스러움...]

    [정면 5간의 민도리집 구조의 깔끔한 심우당...]

    [2층은 창고 1층은 현재 해우소로 쓰이고...]

    [개원사 요사인 안심요...]

    [담장 넘어로 보이는 안심요는 정면 4간에 측면 1간인 맞배지붕...]

    [다시 내려서 파릇해지는 밭에서 올려다 본 경내 ...]

    [마당 끝에 자리한 불유각과 우측의 화현전...]

    [개원사 화현전(化現殿)...]

    화현전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평면을 갖고 있다. 초석은 방형초석을 사용하고 있고 그 위에 원통형의 기둥을 세웠다. 건물 규모에 비해 기둥이 가늘게 사용되었다. 공포는 초익공을 사용했는데 보머리가 매우 길게 외부로 노출시켰기 때문에 전형적인 익공건축과 비교해 어딘가 남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측면은 풍판을 이용해 막아댔다. 전면창호는 모두 4짝의 띠살창호를 이용했다. 띠살창호를 만드는데 있어 울거미를 매우 두껍게 처리해 투박한 외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개원사 화현전 현판...]

    화현전에 사용된 주련은 다음과 같다.
    십이대원접군기(十二大願接群機) 열두 가지 큰 원력으로 갖은 중생 건지시고
    일편비심무공결(一片悲心無空缺) 중생향한 자비심에 모자람이 없더라.
    범부전도병근심(凡夫顚倒病根深) 범부는 제자리를 잃어 병이 깊으니
    불우약사죄난멸(不遇藥師罪難滅) 약사여래를 못 만나면 죄 면하기 어렵도다.

    [개원사 화현전의 주불인 약사여래석불...]

    화현전은 주불로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석불로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개원사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불상이다. 기존에는 삼성각이라 현판을 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비의 기록에서도 삼성각이 보이고 있고, 내부에 봉안된 불화 역시 중앙에 칠성탱, 오른편에 산신탱, 왼편에 독성탱을 모시고 있어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의 화현전은 내부에 걸려있는 '화현전시주방명기'에 의하면 1999년에 조성되었다. 화기에 의하면 이 당시에 칠성탱과 산신탱이 같이 제작되어 봉안되었으며, 독성탱은 기존의 불화를 그대로 이용한 듯하다.

    [개원사 화현전 주불인 약사여래석불...]

    [약사여래석불의 우측면...]

    [약사여래석불의 좌측면...]

    [개원사 화현전의 좌측엔 독성 목각탱...]

    [개원사 화현전 우측엔 산신탱...]

    [개원사 화현전 내부...]

    [개원사 불유각(佛乳閣)...]

    대각전 오른편에 따로 기단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 불유각과 화현전이 조성되어 있다. 이중 왼편의 건물이 불유각이다. 단간의 건물인데, 내부를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 반간정도 뒤로 물려 벽을 조성했다. 내부에는 석불이 1기 모셔져 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이다. 조선시대 특유의 투박함과 소박함이 묻어나는 석불로 개원사 창건 때 같이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세부를 보면 초석, 기둥 등 많은 부분이 화현전과 유사하게 조성되었다. 따라서 이 건물도 1999년 전후 화현전과 유사한 시기에 조성된 듯하다.

    [개원사 불유각에 모셔진 조선시대 석불...]

    지붕은 모임지붕으로 만들었다. 모임지붕은 꼭대기 부분의 처리가 가장 난감한 부분인데 이 건물은 이곳에 곡선으로 처리된 장식재를 사용해 마감했다. 불유각은 '부처님의 젓이 흐르는 건물'로 해석 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사찰의 경우는 대부분 우물에 불유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곳 개원사에서는 전각에 불유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이채롭다. 주련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江水靜而秋月臨 강물이 고요하니 가을달이 임하고, 信心生而諸佛降 신심이 자라나니 모든 부처님이 강림하네.

    [불유각 석불의 좌측면...]

    [불유각 석불의 우측면...]

    [지붕이 우물같은 불유각와 우측의 화현전...]

    [2층구조의 개원사 범종각을 다시한번 내려다 보면...]

    [개원사 승장조사전의 측면...]

    [개원사 승장조사전...]

    개원사가 호국사찰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건물로 현재 승장조사전을 들 수 있다. 범종각너머 따로 넓은 대지에 단독으로 만들어져 있는 건물이다. 근래에 조성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간반의 평면을 갖고 있다. 초석, 기둥 및 창호 등 각각 세부 디테일의 처리가 화현전, 불유각과 같은 방법으로 처리되었다. 초석은 사각초석을 사용했고 기둥은 원통형의 기둥을 사용했다. 공포는 외1출목에 헛첨차를 갖는 주심포식으로 구성했다. 고주를 이용해 전퇴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승장조사전안에 모셔진...]

    [승장조사전안에 모셔진...]

    [승장조사전안에 모셔진...]

    [종각에서 올려다본 개원사 승장조사전...]

    개원사는 한양을 지키는 호국사찰의 중심이었고, 폐사되기 이전까지 조선불교의 중심역할을 수행하였다 한다. 왜그런지 승군의 함성이 들릴 것 같은 그런 계곡 속의 정감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현재는 복원된 사찰이라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못하고 시도기념물 119호로 되어있다. 모든 역사는 이곳에 모셔진 석불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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